일상 속 부정적 표현 비일비재
직업 비하하는 용어 자제해야
상대 가치인정이 대화의 시작

1980년대 대학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있었고 경찰 대형버스가 붙박이처럼 학교에 상주해 있었다. 전투 경찰들이 배치됐고, 사복 경찰들도 있었다. 학내 동향을 살피고 운동권 써클이나 요주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프락치니 짭새니 하는 은어로 불렀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나 불편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폄하하기에 언어만큼 적합한 수단은 없다. 경찰이나 형사라는 가치중립적인 공식 단어가 있음에도 은어로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그냥 그렇게 사용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운동권 학생들이 그들의 정의에 충실하려 했었던 것처럼 그때 그 사람들도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던 것뿐인데 왜 그런 식으로 부르며 멀쩡하니 직업명을 가진 사람들을 무례하게 표현했나 싶다. 

같은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라도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른 식으로 말하는 것을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바람피우다·내연관계·간통이라는 단어들이 그렇다. 같은 내용이지만 느낌은 극과 극이다. ‘내연관계’는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용어다. ‘바람 피우다’는 뭔가 살짝 잘못된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달한다.

‘간통’은 형법상의 범죄행위를 일컫는 단어로 형사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매우 단호하고도 심각한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형법상의 간통죄는 이미 몇 년 전 폐지됐으니 더 이상 ‘간통’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법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간남이나 상간녀같은 혐오를 그대로 전달하는 표현들은 아직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전후좌우 맥락을 따져서 옳고 그름이나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전혀 없는 낙인찍힌 주홍글씨다. 어쩔 수 없는 분노를 단어에 실어 내보내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이렇게 잔인한 단어들을 별생각 없이 그냥 사용한다. 

이렇게 대놓고 부정적인 표현들 말고도 일상에서 별 뜻 없이 그냥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들도 있다. ‘변호사를 사다’ 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변호사는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연인이다. 옛날 노예나 노비처럼 사고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물론 ‘변호사를 선임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내용을 쉽게 말하려다 보니 그런 식으로 굳어진 것이지, 말 그대로 사람을 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나 말은 내면에 감춰진 기분이나 느낌을 담아내기 쉽다. 아마도 어떠한 이유에서 건 변호사라는 법률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감이나 불편함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법률 전문가를 존중까진 않더라도 별 감정이 없다면 무의식중에라도 그런 식의 무례한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밖에도 일상 생활에서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는 용어들이나 이유 없이 부정적인 표현들은 비일비재하다.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더라도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매우 감정적이고 격정적이며 비이성적인 문장이 돼 버린다.

이왕이면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이에 더해 현상이나 상태, 사물에 대해 자신의 주관을 투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고 말할 수 있을 때 주위 맥락을 파악하기 쉽다. 또한 서로 다른 가치 판단을 하는 상대방과 맥을 끊지 않고 대화하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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