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공정거래법 산책(9)회사분할과 제재처분의 승계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건설업과 임대업을 영위하는 ‘대형건설’은 여러 차례 하도급법을 위반했고, 그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받은 벌점이 6점을 넘었다. 그런데 하도급법령에 의하면 공정위로부터 받은 벌점이 5점을 넘으면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대형건설은 로펌과 대책을 논의했고, 로펌은 대형건설의 건설업 부분만 분리해 제재처분을 받기 전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 공정위는 새로운 회사에 제재처분을 할 수 없고 기존 대형건설에 제재처분을 하더라도 임대업만 영위할 것이므로 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회사분할을 제안했다.

이에 대형건설은 건설업 부분만을 분리해 ‘신대형건설’을 설립했다. 그런데 대형건설의 기대와 달리 공정위는 조달청 등 여러 행정기관에 신대형건설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의 제한 요청(제한 요청)을 했고, 조달청장은 신대형건설에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했다.  신대형건설은 공정위를 상대로 제한 요청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신대형건설: 판사님. 신대형건설과 대형건설은 상호만 유사할 뿐 법적으로 완전히 다른 회사입니다. 신대형건설은 하도급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습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제재를 받는 것은 법치국가 원리에 어긋납니다.

공정위 : 대형건설은 하도급법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회사 분할 제도를 악용했을 뿐입니다.

신대형건설: 회사 분할의 목적이 다소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 분할의 효과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정위 : 대형건설에 부과된 벌점은 모두 건설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대형건설의 건설업 부분을 승계받았다면 벌점 또한 승계받아야 합니다.

신대형건설 : 벌점이 승계된다는 법률 규정이 없습니다. 공정위는 자신이 국회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의 분할 통한 공정거래법상 제재의 무력화

2022년 여러 국회의원들이 국가계약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입찰담합, 일감몰아주기 등 위법행위를 한 회사가 회사 분할 등을 통해 제재를 쉽게 회피하고 있다며 회사 분할 등을 통한 제재 회피를 막겠다는 것이었죠. 과거에는 실제로 회사 분할을 통해 공정거래법상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회사 분할을 통해 공정거래법상 제재를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은 그와 같은 회피가 가능할까요?

회사의 분할이란       

회사의 분할은 기존 회사의 특정 영업을 별개의 회사로서 분할 독립시키는 것입니다. LG화학이 배터리사업을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이때 기존 LG화학을 ‘분할전 회사’라 하고, 새로 설립된 LG에너지솔루션을 ‘신설회사’라 하며, 배터리사업이 분리되고 남은 LG화학을 ‘존속회사’라고 부릅니다. 상법은 신설회사는 분할전 회사의 권리와 의무를 분할계획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승계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분할계획서에 따라 LG화학의 배터리사업과 관련한 권리와 의무만을 승계하죠. 그 외의 권리의무는 모두 존속회사에 남게 됩니다.

로펌의 제안 이유

위 사례에서 로펌은 왜 대형건설에 제재처분 전에 회사를 분할할 것을 제안했을까요? 판례에 의하면 분할전 회사가 입찰담합을 이유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고 나서 회사를 분할해 신설회사를 설립하면, 신설회사는 분할전 회사가 받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의 효과를 그대로 승계하게 됩니다. 앞서 본 것처럼 상법은 신설회사는 분할전 회사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으로 인한 효과를 회사분할로 승계될 수 있는 의무로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분할전 회사가 입찰담합을 했는데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이 부과되기 전에 회사를 분할해 신설회사를 설립했다면, 공정위는 신설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을까요? 과거 대우중공업이 지게차 가격 담합행위를 한 후 지게차 사업 등을 분할해 두산인프라코어를 설립했는데 공정위가 대우중공업의 담합을 이유로 두산인프라코어에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담합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권리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법률 규정이 없는 한 두산인프라코어에 ‘담합한 사실’이 승계되지 않으므로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 이후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지금은 분할 전 회사의 법위반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시정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대법원의 원칙적인 입장은 법률의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제재처분의 효과’는 승계될 수 있지만, 법률의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한 ‘제재사유의 승계’는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도급법상 벌점은 ‘제재처분’으로 봐야 할지, ‘제재사유’로 봐야 할지 애매합니다. 하도급법상 벌점은 그 자체로 어떠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벌점이 일정 점수 이상 쌓이면 비로소 그에 따라 별도의 제재처분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하도급법에는 벌점이 신설회사로 승계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도급법상 벌점을 단순한 ‘제재처분의 사유’로 보게 된다면, 공정위는 신대형건설(신설회사)에 대형건설(분할전 회사)의 벌점을 이유로 제재처분을 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로펌은 이러한 이유로 공정위의 제재 처분 전에 회사를 분할할 것을 제안한 것이죠.

회사의 분할과 하도급법상 벌점의 관계

사례와 유사한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하도급법상 벌점 부과가 내부적 확인행위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 회사의 분할로 승계되는 ‘권리와 의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즉, 대형건설의 주장과 유사한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도급법상 벌점이 일정한 기준을 초과할 경우 공정위가 입찰참가자격 제한요청을 해야 하고, 그에 따라 관계 행정기관이 원칙적으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해야 하는 점에 주목해 하도급법상 벌점이 회사의 분할로 승계되는 의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결국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대형건설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죠.

관련 법령의 정비 필요성

현행 공정거래법은 분할전 회사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 과징금이나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분할을 통한 공정거래법 제재의 무력화를 입법을 통해 막은 것이죠.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도급법은 분할전 회사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만 정하고 있지만, 시정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분할전 회사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 과징금은 부과할 수 있지만 시정조치를 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인 것이죠.

그 외에도 아직 회사의 분할을 통한 제재의 회피가 가능한 영역이 여럿 있습니다. 회사 분할을 통한 제재 회피를 막기 위한 법령 정비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위 사례는 대법원 2019. 4. 25. 선고 2018다244389 판결,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0두47892 판결, 대법원 2023. 6. 15. 선고 2021두55159 판결 등을 기초로 필자가 창작한 내용입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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