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분쟁지역마다 용병 투입
석유·가스 등 에너지자원 확보

바그너·가즈프롬은 ‘푸틴회사’
자원 무기로 이권사업 사유화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한다고 위협하는 건 정말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때나 훨씬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는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방아쇠를 당기듯이 자원을 무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한다고 위협하는 건 정말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때나 훨씬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는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방아쇠를 당기듯이 자원을 무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우려와 비난 속에서도 러시아는 왜 고집스럽게 전쟁을 산업으로, 군대를 기업으로, 분쟁 지역을 수출시장으로 키우고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선 1999년 푸틴이 러시아를 집권하기 직전까지의 현대사를 복기해봐야 한다.

1991년 소련의 해체가 있기 전까지 미국과 소련 양국이 전 세계 이데올로기의 균형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미·소는 서로 맞짱을 뜨기 보단 대리전을 펼쳤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뜨거운 대결이 벌어졌다.

이기적이지만 미·소 강대국은 자신의 영향권 아래 놓인 이들 지역을 마치 연병장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값싼 에너지 자원을 획득했다. 한편으론 에너지 자원 확보가 전쟁의 목적이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마저 사우디아라비아(당시 부패한 정권)의 무기 판매상이었다. 첨단 무기와 최신 전투기를 제공했고 그 댓가로 값싼 가격에 석유를 사들였다.

미·소가 동맹국을 선별하는 방식은 단순했다. 동맹국의 정권이 보수든 진보든 심지어 잔인한 독재자가 통치를 하든 상관없었다. 같은 색깔의 유니폼(이데올로기)만 입으면 무조건 지원했다.

미·소 양국이 서로 뜨거운 전쟁을 피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대리전을 펼친 지난 반세기를 우리는 냉전(the cold war)이라고 부른다. 냉전은 역설적이게도 오랜 기간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상징적인 주문이 됐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자마자 소련이 파산 선언을 했는데도,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 모델은 세계에 저절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이때부터 세계는 파편화되고, 요동치면서, 한눈에 개관할 수 없는 합종연횡의 복잡한 역사책이 된다.

강대국으로 변신하려는 국가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중국은 레닌주의+자본주의로, 인도는 민주주의+사회주의 방식으로 경제개혁이 일어났으며 빠르게 번영했다.

소련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굴욕을 겪은 러시아는 이 시기에 ‘민주주의+국가자본주의’를 실험한다. 푸틴은 러시아의 국영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21세기형 국가자본주의를 연 장본인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 인도가 강대국의 대열에 뛰어드는 군웅할거 경쟁에서 최대 무기는 바로 에너지 자원이었다. 모든 국가가 에너지 자원 안보를 정치적·경제적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말 그대로 경제발전의 연료가 에너지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자신만만한 싸움터다. 푸틴이 설계한 러시아 세력확장의 연료는 두말할 것 없이 에너지 자원이다. 태생적으로 에너지 자원 부국인 러시아는 다른 국가보다 경쟁우위의 출발선에 서 있다. 그러나 강대국을 넘어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려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또 다른 상징이면서 공격적인 해외자원개발 전문기업 자체다. 세계의 분쟁지역마다 진출해 에너지 자원을 박박 긁어모으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받는 댓가로 군인을 제공하고 있다. 총과 대포로 석유·가스를 시추하고 값진 금광을 캐내는 것이다.

바그너 그룹은 사실 러시아 국가자본주의 2.0 버전이다. 앞서 1.0 버전엔 가즈프롬이 있다.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이자 세계 최대 가스 판매회사다. 가즈프롬은 시장의 원리가 아닌 오직 클렘린의 권력자인 푸틴과 그의 남자들에 의해 사업 방향을 결정해 왔다. 가즈프롬이나 바그너 그룹 모두 ‘클렘린의 계열사’인 셈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바그너 그룹이 등장한 이후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 실험이 노골적이고 과격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수십 년전부터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구입해 왔다. 아니, 거의 의존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바그너 그룹을 앞세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의 영토를 위협하고 동시에 에너지 자원 안보도 위협한다.

최근 가즈프롬은 역사상 한 번도 하지 않던 이상한 결정을 했다. 유럽으로 통하는 가스관의 공급 용량을 대거 줄이거나, 일부 가스관의 밸브를 완전히 잠그기도 했다. 에너지 자원을 정말 무기로 쓰는 것이다.

미·소 냉전이 최고조에 치달았을 때도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중단을 했던 적은 없었다. 러시아는 유럽이라는 밀접한 고객이 필요했고 유럽도 손쉽게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끈끈한 비즈니스의 관계가 지켜졌기에 그렇다.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한다고 위협하는 건 정말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때나 훨씬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는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방아쇠를 당기듯이 자원을 총과 대포처럼 쉽게 쓰기 시작했다.

이게 다 러시아가 전쟁을 비즈니스 모델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 경영과 군대는 많은 부분이 닮았다. 현대 경영학의 뿌리가 군대의 효율적인 전략이론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경영학 용어들도 군대에서 쓰던 말들이 계승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전쟁터에서나 쓸 법한 파괴적 의사결정이 현대 비즈니스에서 실제 적용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단 푸틴과 크렘린 주식회사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 가격 폭등을 조장하고, 에너지 자원시장의 변동성을 통해 이윤추구에 나서는 일부 경영진과 투자자들에겐 전쟁도 비즈니스로 여기는 건 매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여러 국가가 자국 기업을 앞세워 유럽시장의 각종 이권사업의 주도권 쟁탈전으로 변질이 돼서도 안 된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쟁은 비즈니스가 결코 아니다.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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