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한 상류층 패션 스타일 각광
튀는 타입에 식상, 인기 아이템 급부상
Z세대 중심 가치소비 트렌드도 한몫
英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이 대표주자

존 F. 캐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캐네디 오나시스(왼쪽)와 디자이너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소피아 리치.
존 F. 캐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캐네디 오나시스(왼쪽)와 디자이너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소피아 리치.

최신 유행의 바로미터, Z세대를 중심으로 ‘올드머니룩’이 뜨고 있다. ‘올드머니’는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올드머니룩은 ‘대를 이어 부를 물려받는 상류층의 옷차림’ 또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몇 해 동안 패션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뉴머니룩’이었다. 눈에 띄는 색상, 화려한 로고 플레이로 ‘나 돈 많이 벌어’를 온몸으로 뽐내는 신흥 부유층의 이른바 ‘플렉스’ 경향을 표현한 옷차림이다.

올드머니룩은 이러한 뉴머니룩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스타일이다. 눈에 띄는 로고는 없지만 소재만으로도 우아함을 자랑하는 니트, 절제된 라인에 잘 만들어진 코트, 유행을 뛰어넘는 좋은 품질의 가죽 아이템 등 대대로 부를 축적해 온 부자들의 옷장에 있을 법한 고급스러운 아이템으로 꾸민다는 것이 특징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와중에 왠지 모를 귀티를 풍긴다고 해 ‘조용한 럭셔리’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브랜드로 치면 로고보다 품질과 장인 정신을 앞세우는 에르메스, 로로 피아나, 브리오니, 브루넬로 쿠치넬리, 델보 등이 올드머니룩과 조용한 럭셔리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올 가을, 왜 올드머니룩에 주목하나?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던 지난 3년. 패션업계를 비롯한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숨겨야 했던 그 한풀이를 옷으로 하려던 것이었을까? 한동안 과감한 색상과 패턴, 눈에 띄는 로고를 앞세운 패션 아이템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억눌린 욕망을 표출하려는 일종의 보복 소비가 유행하기도 했다.

바비인형을 연상케 하는 진분홍색 스커트, 2000년대 초 이른바 Y2K 시대의 느낌을 되살린 메탈 소재의 의상과 아이템이 넘쳐났다. 로고 플레이와 과감한 스타일을 앞세운 구찌, 발렌시아가 같은 명품 브랜드 매장은 적지 않은 금액에 플렉스 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처럼 수년간 이어진 과시적인 스타일에 피로감을 느낀 패션업계가 정반대의 스타일에 주목하게 됐다는 것이 올드머니룩 유행의 이유를 가장 잘 뒷받침해주는 설명이다. 여기에 빠르게 변하는 유행과 패스트 패션을 쫓기보다 더 비싸도 오래 꺼내입을 수 있는 제대로 된 한 벌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한몫했다.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속가능 패션, 가치소비 등과 같은 소비 트렌드다.

한편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단순함을 미학으로 하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는 관점도 있다. 로고를 드러내지 않고 실용적이며 단순한 디자인, 좋은 소재로 만든 브랜드가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올드머니룩 따라잡기··· 핵심은 소재와 뉴트럴 컬러

ai가 그린 버추얼 인플루언서 펠리다.  모두 요즘 유행하는  ‘올드머니룩’의 대표 주자다.
ai가 그린 버추얼 인플루언서 펠리다. 모두 요즘 유행하는 ‘올드머니룩’의 대표 주자다.

다만 우리나라 젠지가 올드머니룩을 소화하는 방법은 ‘원조’와는 조금 다르다. 절제된 톤과 패턴, 고급스러운 분위기 등 올드머니룩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특징은 취하지만 클래식 브랜드가 아닌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올드머니 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들 이를테면, 에르메스, 로로 피아나, 더 로우 등 브랜드의 가격대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캐시미어 니트 한 장에 300만원을 호가한다. 진짜 상속자가 아니라면 엄두 내기 힘들 만큼 비싸도 너무 비싸다. 때문에 요즘의 올드머니룩은 29cm, W컨셉 등 의류 플랫폼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격과 브랜드 명성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소재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올드머니룩의 핵심은 좋은 소재에 있다. 린넨, 실크, 트위드, 캐시미어 등의 소재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이러한 프리미엄 소재를 사용하는 옷은 대개 소재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보기 때문에 간결하고 절제된 모양새가 돋보인다. 이는 확연히 드러나는 옷의 디자인보다 디테일한 선이나 만듦새에 시선을 집중시켜 특별한 장식이나 로고 없이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절제된 톤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올드머니룩의 특징이다. 흰색, 회색, 검은색 등과 같은 무채색을 비롯해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를 내뿜는 뉴트럴 톤이 적당하다. 은은함이 감도는 진주색, 가을 낙엽을 닮은 낮은 명도의 갈색, 올리브그린 등의 자연스러운 색채를 말한다.

뉴트럴 톤의 아이템을 톤 온 톤(tone on tone, 비슷한 컬러끼리 밝기만 조절하는 것)으로 매치하는 것 역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 일조한다. 가령 진주색의 상의에 보다 진한 아이보리나 베이지 톤의 하의를 매치하는 식이다. 여기에 명도가 낮은 갈색빛의 가죽 가방이나 실크 스카프를 더해도 좋다.

액세서리는 과하지 않게 착용한다. 여성일 경우 볼드한 귀걸이 하나와 벨트 정도로 포인트를 주거나 남성일 경우 시계와 팔찌 정도로 마무리한다. 여러 개의 액세서리를 겹친다면 강약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눈에 띄는 목걸이를 하는 대신 귀걸이는 작고 은은한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이애나 비부터 버추얼 인플루언서까지··· 시대별 올드머니룩

백문이 불여일견. 설명만으로 올드머니룩을 따라잡기 어렵다면 직접 보면 된다. 올드머니룩의 정석과도 같은 스타일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과하게 꾸미진 않지만 TPO(시간, 장소, 상황)에 꼭 맞춘 스타일링은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청바지를 코디한 캐주얼룩에도 고급 소재의 니트를 착용한다거나 로퍼를 매치해 친근하면서도 품격 있는 왕실을 보여줬다는 평도 잇따른다.

영국에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있다면 미국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있다. 재클린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부인이다. ‘재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미국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며, 1960~70년대 미국 패션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다. 카멜색 코트에 실크 스카프로 목을 칭칭 감싸 절제된 드레시함을 보여준 룩부터 남색 니트와 코듀로이 팬츠, 여기에 갈색 가죽 가방을 매치해 완성한 아메리칸 캐주얼룩까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코디가 돋보인다.

팝 스타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자 디자이너,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소피아 리치는 그야말로 2023년 ‘인간 올드머니룩’이다. 이번 올드머니룩의 트렌드를 이끌어 낸 장본인이자 올드머니룩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과거 다이애나 비나 재클린 케네디 보다는 조금 더 과감한 라인과 소재를 즐긴다. 우아하고 화사한 아이보리 계열 의상에 볼드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식의 스타일을 자주 선보인다.

올드머니룩의 인기는 AI 아트를 통해 구현한 올드머니 스타일의 버추얼 인플루언서 펠리와 그의 스타일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올 화이트 룩을 입고 승마와 요트를 즐기는 펠리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도 좋다.

- 신다솜 칼럼니스 shinda.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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