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다의 슈퍼 커브(super cub) 시리즈
일본 혼다의 슈퍼 커브(super cub) 시리즈

일본 혼다의 슈퍼 커브(super cub) 시리즈는 1958년 첫 등장부터 양산형 오토바이 기술의 완성체였다. 기술이 시장의 경쟁제품을 완벽히 압도했고, 기술이 소비자의 마음을 단번에 훔쳤다.

단일 시리즈로 2017년 누적 판매 1억대를 찍으면서 역사상 가장 많이 보급된 운송 수단이 된 데에는 지구력, 연비, 내구성 측면에서 혼다의 최강 기술력이 집약됐기에 가능했다. 태어날 때부터 슈퍼맨이었다.

슈퍼 커브 50(50cc) 모델 기준으로 리터 당 실연비는 무려 80㎞다. 2리터 패트 3통이면 서울서 부산을 간다. 내구성은 말할 것도 없다. 혼다의 진짜 별명은 좀비 바이크다.

영국의 디스커버리 채널은 슈퍼 커브에 각종 막장 실험을 했다. 엔진오일 대신 폐식용유를 넣거나, 22m 높이에서 낙하한 후 평소처럼 도로주행을 하는 식이다. 모두 멀쩡히 살아나서 내달렸다. 좀비 슈퍼맨이다.

슈퍼 커브는 외계 슈퍼 파워를 자랑하는데 만듦새는 단순하다. 정비 초보자도 직접 조이고 닦으며 평생을 유지보수할 수 있다. “웬만한 고장은 자전거 가게에서 고칠 수 있다” “오토바이는 멀쩡한데 라이더가 도망간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바이크로 세계 일주를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슈퍼 커브를 선택지에 올려놓는다.

기술경영학에선 혼다와 같은 파괴적 기술력을 에스 커브(s-curve)로 분석한다. 기술 진보의 속도(시간)와 가치(돈)의 상관관계를 에스 곡선으로 나타낸다. 대부분의 혁신적인 기술 가치는 이런 방식으로 측정된다. 초기엔 잠시 멈칫거리다 갑자기 폭발적인 성장을 길게 이룬다. 그러다 정점에선 제자리걸음을 딛는다.

그리곤 새로운 파괴적 기술이 등장한다. 이전엔 대세였던 기술은 소멸되고 새로운 에스 커브 시대가 개막된다. 자동차, 반도체, PC, 스마트폰 등 세상의 모든 기술은 에스 커브의 물결 위에서 진일보한다.

그런데 혼다의 에스 커브는 좀비 에스 커브다. 혼다가 양산형 오토바이 시장에 선보인 파괴적 기술은 무려 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판매 대수로 전 세계 1위 왕관을 내어준 적이 없다. 현대 경영사에선 이례적인 성공 사례다. 에스 커브의 생명력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다의 좀비 에스 커브도 차세대 기술 시장 안에선 변수가 도출된다. 혼다의 전통적인 내연기관 오토바이는 동남아와 한국에선 기술의 혼다다. 반면 요즘 전기 이륜차가 대세인 유럽, 중국, 인도에선 추격의 혼다다.

전기 이륜차 시장에서 혼다의 기술은 트렌드를 쫓아가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혼다의 파괴적 기술(tech)만으로 혼다의 두 바퀴가 세계에서 비교우위가 있다고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여기서 시장경쟁 관점으로 커브를 틀면 조금 다른 이정표를 만난다. 바로 독점이다.

혼다는 독점의 기술(skill)이 뭔지 아는 기업이다. 독점의 기술은 두 바퀴로 달린다.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인 밀렌드 M. 레레는 독점 전략을 ‘소유할 만한 영역’을 ‘충분한 기간’ 동안 지배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1960년대부터 혼다의 오토바이는 오토바이가 국민차로 자리 잡던 국가에선 반드시 소유해야 할 ‘탈 것’이 됐다. 오토바이 팔기에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혼다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주력 수출국가에선 ‘유일한 판매자’가 됐다. 이렇게 되면 ‘충분한 기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계속 남는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독점 영역이 추가된다. 바로 관습과 전통이다. 혼다의 슈퍼 커브는 오토바이의 대명사가 됐다. 동남아에선 어린아이때부터 슈퍼 커브 뒷자리에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세상을 배운다. 슈퍼 커브로 질주하는 순간만은 모두가 슈퍼맨이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은 다른 경쟁사 제품은 쳐다보지도 않는 충성고객을 키워낸다. 요즘 애플이 뉴진스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아이폰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갤럭시 제국인 한국이 주요 타겟이다.

이는 기존에 자리 잡은 무형의 독점 영역인 관습과 전통을 깨려는 시도다. 그만큼 소비자의 감정을 처음부터 사로잡느냐 못하느냐가 독점의 본질이다.

혼다는 네 바퀴에서도 성공적인 독점의 기술을 구사한 적이 있다. 그것도 세계 완성차 시장의 격전지로 불리는 북미 대륙에서 말이다. 1999년에 혼다는 미니밴 오딧세이의 3열 뒷좌석이 접히는 기능을 최초로 적용한다.

지금이야 버튼 하나만 누르면 차체 바닥이나 차체 옆에 작게 폴딩되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엔 파격적인 옵션 사양이었다. 이게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소비자들이 드넓은 적재 공간을 보고 단숨에 매료된 것이다. 북미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포드, GM, 도요타, 닛산 등이 폴딩 기능을 서둘러 탑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북미 시장에 신모델을 출시한 시점은 2004년이다. 왜 5년 뒤에나 출시했을까?

제조업 특성 탓이다. 완성차는 신모델을 준비하는데만 최소 4년이 소요된다. 좌석 폴딩 기능 하나 때문에 당장 공정라인을 멈추고 새로 설계·제작에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다. 덕분에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혼다는 무려 5년 동안 시장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빨아들였다.

사실 북미의 경쟁사 대부분은 공교롭게 모두 2000년 신모델 출시 계획에 따라 공정라인을 개발하고 있었다. 1999년 오딧세이 3열 폴딩의 변혁을 대비할 시간이 없던 것이다. 만약 혼다가 1997~1998년 폴딩 기능을 선보였다면?

혼다의 독점 기간은 1년이거나 아예 없었을 것이다. 경쟁사들이 혼다의 신모델을 여유롭게 베낄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네 바퀴에선 신모델 출시 일정마저 철저한 전략을 세워야 할 만큼 치열하다. 그러나 양산형 오토바이 세계 수출시장에서 혼다에겐 위협적인 경쟁자가 없다. 그냥 독주의 혼다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새뮤얼슨(1915~2009)은 그의 저서 ‘경제학(economics)’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독점의 극단적인 사례는 단 하나의 판매자가 완전한 독점력을 가진 경우다. 이때 그 판매자는 해당 산업에서 유일한 생산자가 된다.”

새뮤얼슨은 덧붙였다. “그 제품을 대체할 제품을 만들 기업은 없다.” 그냥 독점의 혼다다.

글 :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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