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규제라도 기업규모에 따라 부담은 같지 않다. 종업원이 수천명이라면 정부가 요구하는 정보제공 의무도 지키고, 각종 자격을 갖춘 사람도 고르게 채용할 수 있겠지만 열 명도 안 되는 중소기업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기획과 재무, 마케팅과 생산을 한두 사람이 맡아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도 정부가 정해 놓은 규제를 모두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나 벌금을 내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아예 시장진입이 불가능해 질수도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구분하고, 중소기업 중에서도 체급을 고려해 규제를 차등 설계하는 규제 유연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아예 규제유연화법을 채택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야기하는 규제는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개선 수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진 규제라도 지킬 수 없거나 지키는데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서는 타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계속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처럼 규제 생산성이 높은 국가에선 특히 그렇다. 21대 국회만 해도 2023년 6월 20일 현재, 2만2046건이 발의돼 수정가결이 787건, 원안가결은 1257건이나 된다. 근 3년 만에 국회가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2044건이나 되는 입법을 한 것이다. 이중 상당수가 규제이고, 중소기업도 그 영향을 받는다. 법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성을 갖췄는지 여부다.

기업 ‘체급’ 고려한 규제 유연화 필요

3년새 2044건 입법, 中企부담 심화

中企 진입장벽 높은 규제 재고 시급

규제영향 평가시 중소기업 영향평가를 제대로 실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규제입안 시 중소기업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사전에 수정될 수 있다면, 그 만큼 규제준수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원래 전기안전관리업 중 시설물관리업을 전문으로 하려면 10명 이상의 기술인력을 보유해야 한다. 당초 이 규제는 20명 이상이었던 것이 규제영향 분석을 근거로 합리화됐다. 시설물관리업의 경우 신규 창업이나 관리건물 수량이 적은 업체가 많아서 20명 이상의 기술인력을 요구하게 되면, 사업규모에 비해 과도한 잉여인력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시장은 체급차별이 없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규제는 다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한 규칙에서는 진입도 자유, 혁신도 자유, 그래서 성공도 자유, 망하는 것도 자유라는 시장의 동학이 작동하지 않는다.

맥주시장이 그랬다. 예전엔 맥주생산을 하려면 엄청난 장비를 요구하는 규제가 있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맥주시장이 두세 개의 대기업으로만 이뤄졌던 중요한 이유다. 언제부턴가 마트에 가면 수많은 맥주 브랜드가 보인다. 그만큼 소비자의 맥주 선택권이 많아졌고, 맛있는 맥주도 많아졌다. 여기에 규제의 변화가 영향을 줬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규제개선을 통해 이제는 그렇게 엄청난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맥주를 생산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중소기업 규제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영향평가에 좀 더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뜻 보면 특별히 문제가 없는 규제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높은 진입장벽이 되는 규제들이 많다.

국회와 정부에서는 오늘도 이런 규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쉽게 고치기도 어려우니, 이런 규제가 들어서는 것은 어떻게든 사전에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어떤 규제든 중소기업 영향분석을 통해 중소기업의 기업가적 창의성을 꺾어버릴 정도로 특별히 과도한 것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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