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中企 기술혁신 물꼬 틔우려면
뿌리기업⋅신산업 우선 적용 필요
정부 지원, 초기 R&D단계에 집중
인증 절차 까다로워 사업화 난항
최근 5년간 사업화성공률 43%뿐
혁신기술 출시 못하고 사장 우려
대기업엔 특허박스 혜택 막아야

몇 년 전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두고 한판 기싸움을 벌인 한·일 갈등 속에서 우리는 기술혁신 역량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소부장 분야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략산업의 기술 경쟁력이 정작 제조 경쟁력과 비교해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 지도 오래다. 마침 지난 12일과 11일,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술혁신 활동을 위해 규제개선과 세제개편의 중요성을 각각 제시했다. 두 기관의 정책 제안 공통분모는 “기술 사업화 단계에 놓인 기업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란 질문이었다. <중소기업뉴스>가 정부의 기술혁신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책을 살펴봤다.

특허청은 13일 오전 서울 강남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지식재산 평가관리센터’ 출범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식재산평가관리센터의 출범으로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인 지식재산 금융의 기반이 되는 지식재산 가치평가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특허 등 지식재산 기반으로 역동적인 경제성장 실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18일 정부대전청사에서 특허청은 새정부의 지식재산 분야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특허박스’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정책 대상의 중심을 ‘중소기업’으로 언급하면서 관련 업계의 높은 기대감을 끌고 있다.
특허청은 13일 오전 서울 강남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지식재산 평가관리센터’ 출범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식재산평가관리센터의 출범으로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인 지식재산 금융의 기반이 되는 지식재산 가치평가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특허 등 지식재산 기반으로 역동적인 경제성장 실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18일 정부대전청사에서 특허청은 새정부의 지식재산 분야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특허박스’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정책 대상의 중심을 ‘중소기업’으로 언급하면서 관련 업계의 높은 기대감을 끌고 있다.

“중소기업 기술혁신, 자금지원·규제개선으로 물길을 터야 한다.”

지난 12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이와 같은 제목의 ‘기술혁신 규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의 소재·부품·장비 제조 중소기업 354개사를 대상으로 혁신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애로를 조사한 것이다.

중기중앙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술혁신 3단계인 기술개발, 제품생산, 판매·마케팅의 각 단계별 규제를 완화해 산업계 전반에 혁신성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며 기술혁신 관련 규제의 유형별 개선사항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소부장 중소기업들의 대표적인 어려움은 기술혁신의 마지막 단계인 ‘판매·마케팅’ 부문에 집중돼 있었다. 응답 중소기업의 대다수가 △시험·검사 △법정임의·의무인증 △시장진입·가격통제 △공공조달 참여조건 등에서 정부 규제라는 높은 벽에 부딪혔다.

자동차 업종의 A 중소기업 대표는 “시장 수요가 있을 것 같아 사전에 신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도 취득했는데, 정부의 신기술 인증제도(NET)에서 쉽게 인증이 나지 않아 판로 확보가 어려운 지경”이라며 “정부가 기존에 있던 부품을 대체하는 품목을 새로 인증하는데 절차도 까다롭고 기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2015년부터 시작한 인증대체부품제도는 순정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체부품에 대한 인증과 보증 제도다. 성능과 품질이 순정품과 같거나 유사하고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때문에 대체부품의 시장을 활짝 열었지만, 정작 기술혁신으로 제품을 생산한 중소기업은 까다로운 성능시험 절차를 통과해 인증표시를 붙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실정이다.

사업화 단계의 ‘정책 함정’

앞서 A 중소기업의 사례는 기술성숙도(TRL: Technology Readiness Level) 단계 가운데 ‘사업화 단계에서의 정책 함정’을 말한다. 사업화 함정은 각종 규제와 세법 등의 정부 정책이 특허 등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사업화로 촉진하려는 기술혁신 중소기업의 역동성을 되레 저해시키는 부작용 현상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성숙도는 ‘연구개발→ 시작품→ 실증평가→ 표준화·인증→ 사업화’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 이 가운데 마지막 ‘사업화’ 단계는 중소기업의 아이디어가 시제품과 시스템이 신뢰성 평가를 받고 시장에 본격 양산돼 매출을 발생시키기 직전을 뜻한다. 열악한 규모의 연구인력과 투자환경 속에서도 기술혁신으로 성장의 고삐를 잡아당기는 결정적인 시기인 것이다.

기술성숙도는 정부의 연구·사업비를 책정할 때 정량적인 평가를 위해 활용하는 평가 잣대다. 지난 13일 산업부가 ‘제28회 올해의 산업혁신기술상’ 시상식을 열고 유공자 6인을 시상했는데, 기술성숙도 5단계에 해당하는 ‘사업화 기술부문’에서 3명의 중소·중견기업 대표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외에 신기술과 청정에너지기술 부문에서 대기업 및 국책연구소 연구자 3명이 뽑은 것을 보면, 정부가 사업화 기술을 산업혁신 확산의 핵심 지렛대로 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중기중앙회의 ‘기술혁신 규제 실태조사’ 보고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시사점을 던져줬다. 먼저 그동안 중기중앙회는 규제개혁 이슈에 있어 지엽적이고 개별적인 규제개선 사항에 주목해 왔다면, 이번 보고서를 통해 혁신형 중소기업계를 포괄하는 전반적인 기술혁신 규제를 3단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살피면서 정책과제를 발굴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중기중앙회는 이번 보고서에서 소부장 중소기업들의 기술성숙도를 진단하고 각 단계별 기업 비중을 처음으로 파악했다.

조사결과 현재 개발·구상 중인 기술의 기술성숙도 단계를 응답(복수응답) 비중별로 살펴보면 ‘연구개발’ 단계가 70.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화’ 단계가 30.7%, ‘시작품’ 단계는 21%였다. 나머지 ‘표준화·인증’과 ‘실증평가’는 각각 16.1%와 10.7%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기술성숙도는 개발기술의 이행단계를 평가하기 위해 5단계로 정량화된 측정지표인데 이번 조사 결과 ‘U자형’ 경향이 강했다”라며 “이는 소부장 중소기업이 초창기 기술개발 단계에 쏠려 있으며 실증평가와 표준화·인증의 중간 단계를 거쳐 최종 사업화 단계까지 기술혁신을 끌어올리는 데에 자금부족과 정책적 난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걸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사업화단계 조세 지원 전무

기업의 기술혁신이 기술성숙도 분포도 가운데 유독 앞 단계에만 집중된 것은 정부의 조세제도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중심에 몰린 탓도 크다. 최근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도 기업의 초창기 연구개발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신성장·원천 기술에 포함되면 대기업은 관련 연구개발 비용의 최대 30%, 중소기업은 40%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또 시설 투자에 대해서는 대기업에 6%, 중소기업에 18%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이에 비해 사업화 단계에 적용되는 조세지원은 전무하다.

중기중앙회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 혁신 장려를 위한 특허박스 도입방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혁신기업을 육성하려면 지식재산 등에 대해 포괄적인 세제 혜택을 적용하는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허박스(Patent Box) 제도란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통상의 법인세율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기술이전에 대한 과세상의 혜택에서 더 나아가, 특허를 사용해 생산된 제품을 판매해 발생한 소득에도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경연은 우리나라에서 지식재산에 대한 투자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지원이 연구개발 투자단계에 집중돼 있고, 사업화 단계에선 별다른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라는 주장이다.

이어 한경연은 특허 등을 활용해 생산한 재화나 용역을 판매하거나 지식재산의 이전·대여를 통해 발생한 소득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의 50% 감면을 제안했다.

중기중앙회가 사업화 단계의 함정을 각종 기술혁신 관련 규제개선 측면에서 톺아봤다면, 한경연은 기술거래와 라이선싱에 관련된 제도를 조세감면 확대 측면에서 꼬집은 것이다.

실제 투입되는 R&D와 비교해 사업화 성공률은 크게 미진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한국의 총 R&D 비용은 무려 102조1352억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 비율은 4.93%로 세계 2위다. 특허 출원건수는 24만건으로 세계 4위 수준이다.

반면 최근 5년간 사업화 성공률엔 사업화의 함정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업화에 성공한 건수는 지난 2017년 248건에서 2021년 144건으로 감소했고, 사업화 성공률은 연평균 ‘42.9%’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의 사업화 성공률을 단순 대입하면 앞서 중기중앙회가 조사한 사업화 단계에 있는 약 30%인 106곳의 소부장 중소기업 가운데 ‘절반도 되지 않는’ 40여곳만 신제품·서비스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나머지 60개 소부장 중소기업의 혁신적인 기술이 시장에 출시도 못해보고 사장될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섬유업종의 B 중소기업 대표는 “생산직에서 대졸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부설연구소까지 설립해 신제품 출시가 임박했다”며 “특허 등 기술혁신 바탕으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 정부가 조세지원 우대 사항을 늘려준다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혁신형 중소기업으로의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인실 특허청장 “임기내 도입할 것”

윤석열 정부는 특허박스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허청은 지난해 8월 18일 지식재산 분야의 종합계획인 ‘역동적 경제 실현을 위한 지식재산 정책방향’을 통해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한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정부는 정책 대상에 ‘중소기업 중심’을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하는 특허박스 제도는 중소기업을 우선 적용하는 조세감면 법안개정으로 추진 중에 있다.

이번 21대 국회에선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4월 법안 발의를 했다. 양 의원은 중소·중견기업이 자체 개발하거나 이전 및 대여받은 특허 등을 사업화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각각 25%, 20% 감면함으로써 지식재산의 활용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취지다.

이에 앞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소기업은 30%를, 중견기업은 15%를 감면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해 지난 2020년 7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특허박스의 조세감면 주체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으로만 한정해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이 혁신의 혜택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 방향성에 중소기업계는 큰 공감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행 중소기업의 R&D 세액공제를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과 동일하게 특허박스 세액공제 역시 동일 제외 적용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특허박스 제도는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소부장 등 전략 기술·산업 분야에 특정한 적용을 고려해 이슈화됐다. 이 때문에 앞으로 특허박스 제도를 시범운영할 때는 전체 산업 분야에 적용하는 것보다 ‘시범적용→ 보완→ 재적용’ 방식의 추진으로 도입 시기와 정책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필요도 있어 보인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소부장 분야와 같이 국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기술역량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분야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을 비롯해 반도체·헬스케어·바이오·정보통신(ICT)·원전·방산 등의 중소기업계 미래 산업분야 등을 중심으로 우선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특허박스 Patent Box : 기업의 순이익 가운데 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등과 같은 지식재산권에 의해 창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법인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기업의 R&D 촉진을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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