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구석구석 잡동사니 산적
욕심 탓 못버리는 악순환 반복
SNS통해 나누니 ‘마음의 평화’

4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할 때의 일이다. 이삿짐을 챙기면서 끝도 없이 나오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구며 주방용품, 옷가지들과 존재조차 잊고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 좁은 집으로 이사하는 터라 미련 없이 탈탈 털어 버렸다. 가져갈 물건보다 버린 것들이 더 많을 정도로.

그렇게 꼭 필요한 것만 챙겨 왔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이사 온 집은 챙겨 온 짐을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작았다. 그러니 또 버릴 수밖에. 다시버린 짐들이 한 트럭은 됨직했다. 그랬다. 정리하기 전에는 필요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온갖 고민을 다 했지만, 막상 없애고 나니 무엇이 없어졌는지조차 몰랐다. 그때 알았다. 꼭 필요하다는 것은 상수가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변수라는 것을. 

어느 틈에 벌써 입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집 정리를 한답시고 주말에 여기저길 열어보니 한숨이 쉼 없다. ‘분명 4년 전에 싹 다 정리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생물들이 자가증식 한 것인지 집안의 구석구석 빈 곳이 없다. 4년 전에 다 버렸으니 별것 없을 거라는 착각을 확인하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살다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도 막상 눈에 띄면 왠지 당장 쓸 것만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된다. 버리기도 아깝지만 없애면 후회할 것 같아서다. 더러는 잔존 가치가 없음에도 살 때 들어간 돈이 생각난다. 이쯤 되면 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머리만 복잡하고 이래저래 고민스럽다. 결국 장고 끝에 남기게 되고 창고는 비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낸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나눔이다. 어차피 안 쓰는 물건인지라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주는 게 낫기 때문이다. 급히 앱을 깔고 물건을 올리고 보니 또 마음에 바뀐다. ‘오래됐어도 새것인데, 몇 번 안 쓴 건데, 디자인은 빠져도 내구성은 이만한 게 없는데 등등.’ 내 논에 물 대기식의 자기 합리화가 다시 시작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물건을 다시 내리는 것은 창고 속에 다시 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불특정 다수가 이미 그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올렸다가 내리면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계산속 밝은 내면의 욕심을 감추고 관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외면수습(外面收拾)의 욕망이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원초적 본능과 충돌한다. 살면서 몇천 원이라도 비싸게 산 적이 많고, 수천만원을 날린 경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소한 것에 연연하니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돈보다 체면을 선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내게 불필요한 물건을 무료로 준다고 올렸더니 하루 만에 모든 정리가 끝났다. 덕분에 불필요한 물건을 끌어안고 끙끙대던 고민을 아주 시원하고 깔끔하게 날렸다.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다. 이렇게 좋은데 왜 불필요한 물건을 여태 끌어안고 있었는지. 별것도 아닌데 왜 그리 집착했었는지. 무의식중에 매사에 내려놓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 안달하는 욕심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습성도 오래되면 인격화된다. 인격화된 습성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비합리적인 감정의 고리를 만들고 이성적 판단을 무력화한다. 이렇게 되면 통제되지 않은 욕심은 어느 순간 습성이 돼,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늘 복잡한 고민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 살아가며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의 계산기를 내려놓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내려놓고 나면 평안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집 정리를 하다 새삼 느낀다. 그나저나 내가 지난 주말 내려놓은 것은 욕심인가, 아니면 불필요한 물건인가.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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