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8000억씩 4년 걸쳐 통큰 투자
콘텐츠판매처→공급처 지위 인정
K-콘텐츠 오징어게임·킹덤 투자

초대박에도 제작사 수익 ‘쥐꼬리’
IP영구적 독점 풀어야 동반성장
국내 망 사용료 문제 ‘넘어야할 산’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CEO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CEO

서프라이즈였다. 지난 4월 24일 월요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첫 일정은 원래는 재미한인교포 간담회였다. 동행한 취재진도 그렇게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린 건 뜻밖에도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CEO였다.

블레어하우스 접견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마주 앉은 테드 서랜도스 CEO는 말했다. “K-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앞으로 4년간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리얼리티쇼의 창작을 돕겠습니다.” 25억달러면 한화로 3조3375억 원에 달한다. 매년 8000억원 정도를 K-콘텐츠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서랜도스 대표가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기업의 관계가 마치 한미 동맹과 같다고 말했는데, 100% 공감합니다. 한미 동맹은 자유를 수호하는 가치 동맹인데,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 요건입니다.”

넷플릭스가 향후 4년 동안 K-콘텐츠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25억달러는 지난 7년 동안 넷플릭스가 투자한 금액의 2배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진출 당시의 목적은 당연히 한국 시장에서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2017년 봉준호 감독 ‘옥자’에 투자하면서 입장이 달라졌다. 한국을 콘텐츠 판매처에서 콘텐츠 공급처로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옥자’에 500억원을 전액 투자했다. 2017년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30억원이 채 안 됐다. 넷플릭스의 어마어마한 자금력에 한국 영화 산업 전체가 놀라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옥자’는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봉준호 감독의 인지도에 힘입은 결과였다.

정작 ‘옥자’의 흥행 성적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는 이때부터 K-콘텐츠의 상업적 가능성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국내 영화사와 드라마 제작사들과 연쇄 접촉을 하면서 투자 의사를 비추기 시작했다.

갓 쓴 좀비 신드롬 ‘킹덤’ 대박

당시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분명했다. 가성비 때문이었다. 할리우드에 비해 한국 콘텐츠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팩트를 파악한 것이다. 정작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는 넷플릭스의 제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요구 조건은 국내 콘텐츠 투자사들에 비해 너무 불리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9대 1의 수익 배분을 요구했다. 심지어 콘텐츠의 지적재산권은 모두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계약이었다. 제작사 입장에선 콘텐츠가 대박이 나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없고 장기적인 부가가치 창출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넷플릭스와 K-콘텐츠 제작사의 관계를 변화시킨 결정타는 ‘킹덤’이었다.

한국 시청자들한텐 드라마 ‘시그널’의 작가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킹덤’은 이른바 K좀비 신드롬까지 일어날 정도로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갓을 쓴 좀비들을 보고 환호하면서 조선시대 갓이 새로운 패션 트렌드로 떠올랐을 정도였다. ‘킹덤’은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가 글로벌 흥행으로 이어지며 성과를 맺기 시작한 시초였다. ‘킹덤’의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주가도 폭등했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K-콘텐츠 제작사들은 앞다퉈 넷플릭스와 투자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IP를 영구적으로 넷플릭스측에 제공하는건 채찍이었지만 글로벌 흥행이라는 당근이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연출하고 출연한 감독과 배우 입장에서도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진출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은 결코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었다.

덕분에 국내 콘텐츠의 제작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톱배우 매니지먼트 회사들도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은 제작사의 작품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넷플릭스의 특장점이 K-콘텐츠 산업의 판도를 바꿔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2021년 넷플릭스는 K-콘텐츠 산업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15편을 생산했다. 바로 여기에서 터진 작품이 ‘오징어 게임’이다. 10년 동안 투자사를 찾지 못했던 황동혁 감독의 시나리오에 넷플릭스는 제작비 253억원을 전액 투자했다. 결과는 넷플릭스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할 초대박이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무려 1조52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넷플릭스가 밝힌 게 아니라 넷플릭스 직원의 내부 정보 유출을 통해 드러났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수익을 밝히기 꺼렸던 이유는 바로 IP독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오징어 게임’ 제작진은 실제로 콘텐츠를 창조했지만 실제로 ‘오징어 게임’으로 돈을 번 건 넷플릭스였다.

물론 투자자인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실패했을 경우 리스크도 모두 책임졌다. 그런데 넷플릭스 입장에선 253억원 투자금은 결코 큰 돈이 아니었다. 2023년 1분기 넷플릭스의 매출은 81억6000만달러다. 한화로 10조원이 넘는다. 영업이익은 13억1000만달러다. 한화로 1조7000억원에 달한다. 253억원은 넷플릭스 입장에선 결코 하이 리스크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맞은 코리안 로또에 가깝다. 게다가 ‘오징어 게임’은 미국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 받은 것이다. 당연히 넷플릭스는 K-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시장이기 때문이다.

제2의 오징어 게임 투자·제작

넷플릭스는 2022년 25편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8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에는 28편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4년 동안 매년 8000억원 씩 3조원 이상을 투자하게 된다. 그 중에서  ‘오징어 게임’이 한두편만 나와도 산술적으론 이미 투자금을 뽑고도 남게 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이미 ‘오징어 게임2’를 투자제작하고 있다. 이정재와 이병헌 그리고 정호연 같은 주요 배우들의 캐스팅은 이미 끝난 상태다.

그렇지만 K-콘텐츠 제작사 모두가 넷플릭스 투자를 버선발로 맞이하는건 아니다. 넷플릭스 K-콘텐츠 투자의 기폭제가 됐던 ‘킹덤’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오히려 넷플릭스와 거리를 두고 있다.  ‘킹덤’ 이 글로벌 흥행을 했지만 정작 재주는 에이스토리가 넘고 돈은 넷플릭스가 버는 상황을 경험한 탓이다.

에이스토리는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때는 넷플릭스 투자를 받거나 넷플릭스 플랫폼을 우선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명 채널에 가까운 ENA를 통해 방영했다. 덕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IP는 온전히 에이스토리가 가져갈 수 있었다.

결국 넷플릭스에 입성했지만 역시 수익은 에이스토리가 가져가는 구조였다 ‘킹덤’으로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지만 에이스토리 입장에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더 값어치 있는 콘텐츠라는 의미다. 에이스토리의 행보는 넷플릭스 투자의 명암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 탓에 프랑스에선 아예 넷플릭스의 콘텐츠 IP 독점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프랑스 콘텐츠를 영구적으로 독점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IP독점의 문제는 지난 3월 12일 세상을 떠난 만화 ‘검정고무신’의 원작자 고 이우영 작가의 사례에서도 드러났다. 45권의 단행본 만화를 그린 원작자였지만 애니메이션 수익에서 얻은 저작권료는 435만원에 불과했다. 넷플릭스 투자는 K-콘텐츠엔 독이 든 성배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IP를 넷플릭스가 독점한다면 결국 K-콘텐츠 산업은 넷플릭스의 폭스콘이 될 수도 있다. IP를 가진 애플과 조립만 하는 폭스콘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오히려 넷플릭스는 지금 K-콘텐츠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는 광고 상품과 비밀번호 공유 제한 정책이라는 2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한다. 넷플릭스는 2022년 11월 기존과 같은 광고 없는 구독 상품의 가격을 10.99달러로 올렸다. 프리미엄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신 월 6.99달러인 광고가 있는 구독 상품을 출시했다. 유료 구독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넷플릭스는 광고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일단 2023년 1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광고가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상품에 매력을 느껴서 넷플릭스에 가입한 구독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에만 175만명의 구독자가 증가했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2022년까지만 해도 감소세였다. 디즈니 플러스나 아마존 프라임과의 경쟁 탓이 컸다. 반면 기존 광고 없는 프리미엄 상품의 구독자가 광고 상품으로 갈아탄 비율은 극소수였다.

광고·구독수익 ‘두 토끼’ 겨냥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광고 수익과 구독 수익을 모두 노리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서서히 전환해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른바 집안단속인 비밀번호 공유 제한 정책도 서서히 강화해나가고 있다. 2월에 먼저 적용한 캐나다에선 오히려 유료 구독자가 늘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비밀 번호 공유로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사용자는 1억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넷플릭스는 집안 단속을 서서히 확대해서 이들을 유료 구독자로 흡수해나간다는 계산이다.

그러자면 이 기간 동안 ‘킹덤’이나 ‘오징어 게임’처럼 넷플릭스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킬러 콘텐츠가 반드시 탄생해야만 한다. 콘텐츠 투자는 확률 게임이다. 10편 투자하면 1편 대박이 난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가 가장 확률이 높은 투자처라고 보는 것이다.

테드 서랜도스 CEO가 2023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콘텐츠 지출과 매출 성장률은 정비례 한다”고 말한 이유다. K-콘텐츠가 절실한 건 오히려 넷플릭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SK브로드밴드와 망사용료를 놓고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미국 시장만 놓고 봐도 넷플릭스가 인터넷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육박한다. 유튜브보다도 높다.

한국 인터넷망으로 큰 돈을 벌어간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이 2021년 한국 법원의 1심 판결 내용이었다. 넷플릭스는 불복했고 2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K-콘텐츠 산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시청자들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제작사들한테도 중요한 투자처가 됐다. 한미콘텐츠동맹의 상징이 됐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와 K-콘텐츠 사이에는 아직 풀어야할 협상 과제가 적지 않다. ‘오징어 게임’을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랜도스 CEO의 악수가 그 시작이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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