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기업 IBM 변천사
컴퓨터 원조, 대공황 직격탄에 흔들
천문학적 투자, ‘빌딩탑 컴퓨터’개발
‘하드웨어→솔루션’기업으로 탈바꿈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도 선도
IT솔루션 분사, 양자컴퓨팅 정조준

“THINK DIFFERENTLY.” 실리콘밸리 지역 한 가운데엔 IBM과 애플의 역사가 기록된 실리콘밸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IT 역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이다. 당연히 IT역사의 한 획을 그은 IBM과 애플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바깥에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THINK DIFFERENTLY”는 애플의 유명한 광고 문구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기존 컴퓨터 산업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해당 광고 문구를 만들었다. 일부러 문법도 틀렸다. 원래는 “THINK DIFFERENT”가 맞다. 사실 이 문구를 처음 쓴 건 애플이 아니었다. IBM이었다.

IBM은 컴퓨터 광고 문구로 “THINK DIFFERENT”를 사용했다. 스티브 잡스는 IBM과 애플을 차별화하기 위해서 약간 비틀어서 “THINK DIFFERENTLY”라는 문장을 사용했다. 실리콘밸리 바깥에선 애플 고유의 광고 문구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IBM과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가 낳은 결과였던 셈이다. 원조는 IBM이었다.

 

금전출납기 회사로 출발

분명 IBM은 컴퓨터의 원조 맛집이다. 정작 요즘 IT 소비자들한테 IBM은 관심 밖 기업이다. 애플은 알아도 IBM은 모른다. 그렇지만 예전 같진 않아도 IBM은 분명 지난 110년 동안 살아남았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덕분이다. 변신의 귀재라는 말은 IBM한텐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정말 “THINK DIFFERENT”했기 때문이다.

IBM은 1911년 창업됐다. 창업자는 찰스 플린트였다. 이때만 해도 컴퓨터 회사라기 보단 금전출납기 회사였다. 1911년 기준으론 물론 이것도 컴퓨터였다. 금전출납기 매출을 기반으로 1915년 11월 11일 뉴욕 증시에 상장된다. 상장 당시 이름은 CTR이었다. 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의 약자였다. 이때의 컴퓨팅이란 계산을 의미했다.

상장 이후 100년 동안 증시에서 자리를 지키는 기업은 드물다. IBM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1924년 IBM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IBM은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의 약자다. 이름에 이미 기업의 정체성이 들어있다. 글로벌하게 비즈니스를 하거나 돕는 기계라는 뜻이다. 정작 이때만해도 이름은 거창했지만 아직은 글로벌한 기업까진 아니었다. 게다가 대공황까지 겹친다.

1930년대 대공황은 IBM한테도 고난기였다. 200달러가 넘었던 주가는 9달러까지 폭락한다. 그래도 파산은 면한다. 이때 당시 사장이었던 토마스 왓슨이 IBM의 첫 번째 변신을 주도한다. 10억 달러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어서 정부의 대형 투자를 이끌어낸다.

당시 루즈벨트 정부는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대형 국책 사업이 많았다. 특히 인구통계나 공장재고관리에 IBM의 계산기가 적극 도입됐다. 특히 인구센서스엔 IBM의 천공카드 기반 비즈니스 머신이 필수였다.

토마스 왓슨의 아들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50억달러의 연구개발비를 써서 메인프레임컴퓨터라고 불리는 컴퓨터를 개발한다. 당시엔 아직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기 전이었다.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IBM의 컴퓨터는 건물 크기만큼 거대했다. 데스트탑이나 랩탑과 비교한다면 ‘빌딩탑 컴퓨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IBM은 빌딩탑 컴퓨터를 분양하는 회사로 변신한다. 1980년대까지 IBM은 전세계 정부와 기업들에게 빌딩탑 컴퓨터를 팔면서 전성기를 누린다. 빌딩탑 컴퓨터이긴 하지만 입출력에 관한 컴퓨터의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IBM은 관련 원천 기술을 독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컴퓨터 데이터 입력의 기본기였던 플로피 디스크도 IBM의 작품이었다.

이때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IT 생태계 조성 전략을 처음 활용한다. IBM이 가진 컴퓨팅 원천 기술 일부를 공개해서 시장에 경쟁자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양산한다. 시장이 커지고 사용자도 늘어나면 IBM은 저작권료로만 자동으로 돈을 벌게 된다. 시장을 키우는 건 IBM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고 앱스토어를 조성한 전략이 사실 IBM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애플은 단지 “THINK DIFFERENTLY”했을 뿐이다.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IBM을 빅블루라고 불리는 거대한 IT 기업으로 성장시킨 제2 파운더다. 그래서 지금도 IBM이 개발하는 슈퍼컴퓨터의 이름에는 늘 왓슨이라는 돌림자가 붙는다.

 

퍼스널컴퓨터 시대 개막

IBM은 애플이 처음 만든 퍼스널 컴퓨터의 가능성도 먼저 알아봤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애플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다. 사무실에서만 쓰던 컴퓨터를 개개인이 쓰는 시대가 열렸다. 스티브 잡스의 비전은 늘 같았다. 컴퓨팅 파워를 사무실에서 집으로 집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손으로 옮겨놓는 것이었다.

이때 IBM은 막강한 하드웨어 제조력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잡스를 누르고 PC 시장을 독점해버린다. 스티브 잡스가 썼던 “THINK DIFFERENTLY”라는 문구는 작은 다윗 애플이 거대 골리앗 IBM을 상대로 대항하기 위한 구호였던 셈이다. 잡스는 빅블루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애플을 포지셔닝했다.

그렇지만 컴퓨터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면서 빅블루의 시대도 끝나버린다. 소비자들은 퍼스널 컴퓨터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오피스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가 탑재될 PC 제조사를 마음대로 고르는 구조로 시장이 재편된다. 이때 델이나 컴팩 같은 컴퓨터 제조사가 등장한다. IBM은 수렁에 빠진다. 한때 빌딩탑 컴퓨터의 지배자가 PC 시대에는 MS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1994년 전 세계 PC 시장 1위를 컴팩한테 내준다. 1993년 IBM은 8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다. 무려 11만명을 해고한다.

 

IBM 뼈대인 PC사업부 정리

이때 IBM은 신의 한수를 둔다. IBM 최초로 비IBM 출신 CEO를 선임한다. 루이스 거스너였다. 루이스 거스너는 IBM을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IT 솔루션 컨설팅 회사로 변신시킨다. 컴퓨터만 파는 게 아니라 컴퓨터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으로 관리운영을 도와주는 회사가 된다.

소비자들이 컴퓨터를 사는 이유는 컴퓨터가 필요해서만이 아니다. 컴퓨터로 풀고 싶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구를 더 잘 쓸 수 있게 도와주면 고객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때까지 IBM은 삽만 팔았다. 이제부턴 삽질하는 법까지 팔게 됐다. 루이스 거스너는 아예 PC사업부를 매각해버린다. IBM의 뼈대였던 사업부를 매각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루이스 거스너의 IBM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마침 1990년대엔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은행권 IT 솔루션 수요가 폭발하고 있었다. 월가 은행들은 IBM의 컨설팅을 받아서 은행 IT화에 속도를 냈다. 빅블루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클라우드 혁명이었다. 아마존의 AWS는 컴퓨팅 파워가 부족한 회사한테 대형 컴퓨터 서버를 대여해주는 서비스였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사는 것보다 빌리는 게 싸다. 당시 IBM은 컴퓨팅 파워를 사용법과 함께 파는 솔루션 회사였다.

그런데 살 필요도 배울 필요도 없기 그냥 빌리기만 하면 다 돌아가는 클라우드가 등장하면서 시장의 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빌려 쓰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사용법을 몰라도 될 만큼 편리했다. IBM한텐 직격탄이었다.

이때 IBM은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였다. 클라우드라는 건 공용공간에 데이터를 올려두는 걸 뜻한다. 그런데 보안상의 이유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기업과 정부가 있을 수 있다.

 

아픈 손가락 ‘왓슨헬스’ 매각

IBM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는 퍼블릿과 프라이빗 영역으로 정보를 나눠둔다. 고객사에 맞춤형으로 데이터를 분할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필요한 기술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IBM은 2019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기술을 보유한 오픈소스의 선두주자인 레드햇을 340억 달러에 인수한다. 덕분에 IBM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서 아마존이나 MS와 차별화되는 시장을 구축할 수 있었다.

2020년 취임한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는 과거 루이스 거스너가 그랬던 것처럼 더 과감한 변신을 추구한다. IT 솔루션 부문을 분사해버린 것이다. IT 솔루션 부문은 IBM의 PC 사업부가 매각되고 IBM의 척추 역할을 해왔던 사업부다. 전체 매출의 4분의 1 이상을 담당해왔다.

그런데도 아르닌드 크리슈나 CEO는 이걸 분사해버렸다. 어떤 면에선 IBM의 전통을 따른 셈이다. 변신을 위해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왓슨 헬스도 매각했다. 사실 왓슨 헬스는 IBM의 아픈 손가락이다. IBM은 AI와 슈퍼컴퓨터를 활용해서 질병을 진단하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이른바 왓슨 포 온콜로지였다.

대학병원에서 앞다퉈 왓슨을 도입했다. 기업 대상 영업에 강한 IBM의 전력이 입증된 셈이다. 정작 IBM의 AI 진단은 오진율이 너무 높았다. 기술적으로 실패했다. 결국 사모펀드에 매각해버린다. 오픈AI가 일으킨 생성AI 혁명에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였다. IBM의 AI 접근법이 틀렸던 셈이다.

대신 지금 IBM은 양자컴퓨팅에 집중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를 초월한다. 컴퓨터의 원리는 결국 2진법이다. 전기신호가 켜졌다 꺼졌다 하면 0과 1이 된다. 이게 1비트다. 양자컴퓨터엔 0과 1이 한순간에 공존한다. 이걸 큐비트라고 한다.

슈퍼컴퓨터는 한순간에 한 가지 가능성만 탐색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한순간에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가 수 만년 걸릴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수 시간 만에 풀 수 있다. 아직 기술적 난제도 많다. 그렇지만 IBM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IBM은 100년 빌딩탑 컴퓨터를 만들 때부터 하드웨어 컴퓨팅 분야에서만큼은 늘 선두에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야 말로 IBM에 제일 잘하는 것이다. 그것이 IBM의 “THINK DIFFERENT”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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