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의 엔진이 꺼지고 있다. 제조경기의 바로미터인 공장등록수는 2015년 이후 하향추세에서 반등하지 못하다 20200%를 기록했다. 재고율도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1월 제조업 재고율은 외환위기 시절인 19987월에 기록했던 124%에 근접한 120%에 달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도 원인 중 하나지만, 더 큰 문제는 제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심화에 있다. 특히, 대만과 같은 신흥국은 우수한 기술, 낮은 생산단가, 정확한 납기를 무기로 한 한국의 성장공식을 벤치마킹하면서 빠르게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하청이라고 평가절하되던 파운드리 사업만으로 삼성전자보다 더 큰 기업이 돼 버린 TSMC가 대표적이다. TSMC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56.1%15.5%의 삼성전자를 큰 폭으로 제쳤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EU와 같은 선진국들도 잇따라 제조업 부흥을 선포했다. 미국은 미래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확보를 위해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EU는 지난 16일 제조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독립을 위해 리튬, 코발트와 같은 핵심 원자재 확보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 15, 작금의 위기를 경제전쟁으로 정의하고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민관이 힘을 모아 6대 첨단산업에 550조원을 투자하게 된다. 특히 반도체는 메가 클러스터 조성 등에 340조원을 투자하고, 복잡한 규제와 행정절차도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정치권도 바로 다음 날, 반도체 세제 혜택을 늘리는 조세특별법 개정안을 여야합의로 기재소위에서 통과시켰다.

관건은 실행이다. 민간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결국 정부가 마중물을 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규제개혁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미국 텍사스에 공장 설립을 발표하고 2024년 하반기 양산 시작이라는 계획에 맞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개월 만에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통과시킨 지방정부의 역할에 힘입은 결과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019년 경기 용인에 신공장 설립을 발표했으나 아직까지도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규제완화 심의, 토지보상,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마다 암초를 만나면서 착공 시기는 2022년에서 2025년으로 3년이나 미뤄진 상황이라고 한다. 늦어진 만큼 준공부터 입주까지 걸림돌이 없도록 지금부터 입주규제 완화, 원스톱 지원제도 같은 선제적인 규제개선이 필요하다.

소재, 부품, 장비를 일컫는 소부장 기업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6일 한일정상회담에 맞춰 일본의 소부장 수출규제가 3년만에 해제됐다. 정부가 집중 육성키로 한 6대 첨단산업은 생산공정 전반에 중소·중견기업의 유기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인데, 표면처리, 주조, 금형 등 뿌리산업계에서는 일본 소부장 기업들과의 협업관계가 빠르게 복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3년간의 수출규제가 우리 뿌리기업의 기초체력을 기르게 된 계기가 된 만큼, 이제는 뿌리기업이 R&D 역량을 제고하고 생산성 제고 방안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한일 중소기업간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문샷(Moon Shot)1960년대 미국정부가 달에 가는 탐사선을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예산 투입과 전폭적인 행정 지원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들었던 일을 말한다. 제조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문샷 수준의 범국가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관이 함께하는 한국판 문샷이 더 늦기 전에 쏘아 올려 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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