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조달계약은 총액으로 입찰해 낙찰받는 방식과 단가로 계약해 수요가 있을 때마다 납품하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가계약의 대표적인 형식은 마스(MAS: Multiple Award Schedule) 라는 이름의 다수 공급자 계약이다. 동일한 번호를 가진 물품에 대해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조달청으로부터 각자의 식별번호를 부여받아 단가계약을 하고,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수요기관 입장에선 같은 물품이라도 조건과 가격, 직원들의 선호도 등을 종합해 여러 기업의 물품을 비교 평가해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업의 경우 별도의 입찰 절차 없이 안정적으로 물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 커 판로확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조달 관련 공직을 떠난 지 4년이 다 됐는데도 이따금씩 연줄 연줄로 하소연을 겸한 상담 전화가 온다. 주로 다수공급자 계약에 대한 것이다. ‘등록 물품의 규격을 추가하거나 단가를 변경해야 하는데 최대한 빨리 진행할 방법이 있는지’‘신규 품목에 대한 등록 진행이 안 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언제쯤 등록되는지?’ 등과 같은 시간에 대한 애로 호소가 많다.

문제는 다수자 공급계약을 통한 나라장터 등록은 중소기업이 원한다고 그냥 등록되는 시스템이 아니란 점이다. 다수공급자 계약을 체결하고 최종적으로 나라장터에 등록하는 의사결정은 조달청이 한다.

규격 추가, 단가 변경, 품목 등록 같은 행위 모두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 때론, 규정에 따라서 등록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도 있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답답해하는 주된 원인이다.

절차복잡, 등록에 장시간 소요

공공기관 늑장행정 불만 팽배

애타는 中企人 심경 헤아리길

기업인들과의 대화는 주로 왜 진행이 안 되느냐?’‘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에서 시작된다. 답답한 사정을 듣고 공감하면서 이야길 하다 보면, ‘공공기관은 행정 절차가 왜 그리 복잡한지?’‘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지?’‘기다리는 기업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지등등의 불만으로 옮겨붙는다. 충분히 들어주고 일단은 관련 협회에 문의하거나 컨설턴트와 상의해서 행정 절차를 추진하라고 원론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돌고 돌아 필자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들은 이미 그러한 절차를 완료하고도 결론이 나지 않은 사항이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모두 같아 보이는 사안(事案)이라도 행정부 내에서는 규정에 의해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각종 심의 절차를 포함한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기업인들이 원하는 결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80만 개가 넘는 품목들을 재계약하고 가격 관리하고 하느라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기업인들에게 이런 구구절절한 행정 스토리는 무의미하다. 이것저것 다해보고도 오죽하면 필자까지 연락했을까 싶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답답한 심정에 십분 공감하고, 업무 담당자라면 당장이라도 해결해 주고 싶다. 그러나 수십년 늘공의 경험에 비춰 보자면, 3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재기위 불모기정(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 했던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제3자가 그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이유가 있고, 일 처리가 늦어지거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시간에 쫓기면서 일하는 행정직원들도 나름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각을 다투면서 사업을 경영하는 기업인들의 절실한 심정과는 비교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중소기업인들의 이러한 절실함을 좀 더 헤아리면서 공감한다면 그나마 기업인들의 어려움이나 답답함은 어느 정도라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은 바람이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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