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 민족 최초의 외식 음식은 떡이나 탕 종류였을 것 같다.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50년 이상 된 노포의 대다수는 탕이 주 종목이다. 설렁탕, 해장국, 곰탕 등을 말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같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를 이용해 뼈와 고기 등으로 끓이는 음식이다.

김홍도(1745~1806)의 주막도를 보면 국밥을 먹는 사내가 나온다. 주모는 술을 푸고 있다. 김홍도가 활약하던 시기는 조선이 문화적으로 크게 부흥하고 상공업도 발달했던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인 18세기였다. 조선이 잘 나갈 수 있는 찬스였다고 보는 정조 임금의 재위기간과도 겹친다.

이런 시기에 장시도 당연히 발달한다. 물산이 넘치면 교환이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보부상이 대활약하던 때다. 물건을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다. 전국을 돌면 어디선가 잠을 자야 한다. 그게 주막이고, 객주집이었다. 여러 기록에 보면 주막에서 술과 밥을 먹으면 잠은 공짜였다고 한다.

개인실 같은 건 당연히 아니었을 테고, 여럿이 동숙하는 방이었다. 산을 넘을 때 호랑이나 산적을 대적하기에도 이런 주막 단위의 단체 이동이 유리했다고 한다.

이들이 먹는 음식이 대개 국밥이었을 걸로 추정한다. 당시 부실한 연료 사정과 부엌 설비를 감안하면 반찬을 여러 개 깔고 잘 차려 먹는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주막도는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남자는 발에 행전을 치고 초립을 쓴 상태에 날렵하게 옷을 입었다. 많은 거리를 이동하는 장사꾼이 갖춰야 할 차림으로 보인다.

상에는 반찬 그릇과 술 한 잔이 놓여 있다. 술잔 크기로 봐서 막걸리는 아니고 좀 더 독한 동동주로 보인다. 사내는 그릇을 기울여가며 최후의 한 방울, 최후의 한 술을 더 뜨고 있다. 요즘도 뚝배기 밥을 받으면 기울여서 국물까지 다 퍼먹는다. 이런 관습은 아주 오래된 것임을 보여준다. 몇 백 년이 흘렀지만 민족의 혈통이 이어지는 순간이다. 지금도 국밥집에 가면 막걸리나 소주 한 잔에 국밥을 먹는다. 참 오래된 역사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주막이 바로 유럽식 비앤비(B&B)’이고 이탈리아의 로칸다(locanda)’이다. 잠을 자면 밥을 주는 바로 그런 오랜 숙박소다. 물론 유럽도 옛날에는 아마도 밥과 술을 먹으면 방을 내줬을 가능성이 크다. 밥의 가치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세계가 과거에는 모두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기를 오랫동안 거쳐 왔던 까닭이다.

스프라는 음식이 유럽의 대중음식인 것도 그런 조건에서 나왔다. 스테이크 같은 음식은 당시에 부자나 귀족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서민들은 여러 채소와 곡물, 도축한 동물의 부산물로 끓인 스프를 사먹었다. 그걸 비앤비같은 여인숙에서 큰 솥에 끓여 여행자에게 제공했다.

여인숙에서 여러 가지 요리를 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스도 없었고, 질 좋은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스프는 국물요리다. 추운 계절에 속을 덥히고 배를 불리는 데 좋다. 우리의 국밥이나 매한가지였던 셈이다. 스프에 마른 검은 빵 정도를 같이 제공했다.

딱딱한 빵이라 그걸 스프에 넣어 적셔가며 먹었다. 지금처럼 하얗고 말랑한 빵은 역시 귀족의 차지였다. 우리 민족이 잡곡을 국밥에 넣어 말아먹었을 것으로 본다면, 서로 아주 유사한 역사다. 우리 국밥집에서 뜨거운 쌀밥을 제공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에는 국밥을 먹기 위해 밥을 싸들고 가는 관행이 있었다. 곡물이 귀해 국밥집에 밥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밥을 가지고 가면, 그게 차가우니 주모나 요리사가 뜨거운 국에 토렴해서 주었다. 토렴이란 어떤 재료를 뜨거운 국물에 넣어 데우는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노포에 가면 밥을 따로 주지 않고 국 안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전통이어서 그렇다.

요즘은 밥이 좋아졌고, 젊은 세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경우가 많아 따로국밥의 형태로 나가는 게 많다. 밥을 말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 점심은 국밥 한 그릇, 그것도 토렴해주는 집에서 해보면 어떨까. 김홍도의 주막도를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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