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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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어느 스포츠용품점에 갔다가 초췌한 표정의 그곳 주인장을 만났다. 네티즌들에게 불매 대상으로 꼽힌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하는 분이다. “요즘 어떠세요?”라는 인사조차 건네기 조심스러웠다.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괜찮아요라고 희미한 웃음을 보인 그녀는 어제는 양말 한 켤레 못 팔았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물 한 방울이 반짝였다.

오늘도 이런저런 불매운동이 생겨난다. 항의를 표하는 대상은 특정한 국가나 기업인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먹이사슬의 끝자락에 있는 자영업자다. 그것이 불매운동이 지닌 또 다른 그림자다. 불매운동으로 일본은 반성했을까? 불매운동으로 기업의 경영자는 앞으로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되겠구나라며 뜨끔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대상을 달리하면 어떨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갖는다.

정말로 분노를 표하고 싶다면 기업 대표자나 임원진에게 항의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콜센터에 따지면 역시 상담 근로자들만 고생할 테니 차라리 그 방식이 낫지 않을까 싶다. 불매운동 여파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기업이 아예 문을 닫거나 지점이 철수한 사례도 있지만 그건 정말 드문 사례다.

불매운동 피해자는 자영업자

분노표출로는 문제해결 안돼

·제도, 질서, 시스템 바꿔야

기업은 대체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덩치가 크니 위기를 돌파할 체력이 충분하다. 잠시 자숙하는 척 할 수도 있고, 다른 사업 분야로 방향을 틀 수도 있고, 인력 감축 등의 방식으로 탄력성 있게 상황에 대처할 수도 있다. 언제나 피해자는 작고 힘없는 소점포 경영자 또는 하청업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은 흔하게 반복된다. 대기업 오너 가족이 물의를 빚는 행위를 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하고, 가맹점에 갑질하는 행태가 인터넷에 공개되며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사업장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 사고가 이슈화되면서 사지 않겠습니다선언이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을 보이콧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참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대체로 일시적이며, 문제의 뿌리는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매양 그렇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지만 현상의 본질은 구조에 있지 않은가. 법과 제도, 질서,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바꿀 생각은 않고 분노만 표출한다. 당신의 정의감이나 따뜻한 연대의식은 넉넉히 이해한다. 하지만 자기만족이상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생각하면 다시 답답해진다. 오늘도 우리는 분노만 반복할 따름이다. 지금 분노할 대상을 찾아 돌멩이를 던지고,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이슈를 찾아 또 다른 돌멩이를 던지겠지. 그리하여 공동체의 삶은 나아졌는가?

혹자는 분노가 부족하다고 통탄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의감이 희박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분노나 정의감이 부족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 아닐까.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추후 대책을 마련할 생각은 않고 매번 네 탓을 외치며 희생양을 찾아 좌표 찍는 우리 사회의 도돌이표가 오늘날 우리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소식이 세상을 뒤흔든다. 그런 사건과 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사회는 애초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고가 아니라, 매번 사고를 겪고도 교훈을 찾지 못하는 우리 일상의 우매한 패턴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잠재적 피해자이고, 미래에 대한 가해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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