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경 변호사 (재단법인 경청)
박희경 변호사 (재단법인 경청)

올해 국정감사에서 기술탈취와 관련해 피해기업의 입증책임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이에 따라 피해기업의 입증책임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 측면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기술침해 사건은 가해자의 지배영역에서 비밀리에 이뤄지고, 피해자가 자력으로 가해자 영역에 있는 침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은 증거로 입증되는 사실만 인정한다.

기술침해가 발생한 것이 진실이더라도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법원은 침해사실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입증이 부족한 피해기업은 결국 패소하고, 그로 인한 반사효과로 가해기업은 면죄부를 얻게 된다.

소송상 실체적 진실이 잘 구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양 당사자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자료가 법원에 모두 제출되는 구조로 증거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기술보호가 철저한 미국의 경우에는 입증책임과 무관하게 모든 증거자료가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제출되고 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침해 분쟁에서 파일 부존재를 이유로 증거제출을 거부한 사례가 있는데, 이후 해당 파일이 발견되면서 디스커버리 위반에 따른 제재로 2700만 달러의 징벌금 제재와 상대방 변호사 비용 등을 모두 부담한 바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소송 양 당사자가 충분한 증거를 공유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면, 오히려 법적 분쟁은 조기에 해결될 수 있다.

증거공유·조사기관 참여 필요

전문가 배심제도 도입 바람직

손해액 산정 현실화도 급선무

두 번째로, 행정조사에서 수집, 조사된 증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공정거래법 제110조 등에 따라 공정위에 사건기록을 소송상 요청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있지만, 소송 상대방이 아닌 공정위 등에 기록 송부 이행을 강제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3자인 조사기관은 직무상 비밀 누설을 이유로 사건기록 송부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반행위의 존재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한 자료의 경우에는 제3자인 조사기관에도 소송상 자료제출 이행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기술침해 소송에 있어 전문가 배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법원은 감정인(민사소송법 제33), 전문심리위원 제도(민사소송법 제164조의2)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고도로 전문화·복잡화된 기술 분쟁에 있어 실무상 1인의 전문가에게만 의존하는 기술 분석은 자의적 판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수술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1차 병원 의사는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2, 3차 상급 종합병원에 진료의뢰서를 보내어 전문적인 검사 및 의료 협진 등을 통한 적절한 치료 및 수술 방법이 결정되도록 한다. 기술소송도 이와 마찬가지다. 실체적 진실 확보를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친 전문가 집단에 의한 기술분석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입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기초가 되는 손해액 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여도 및 합리적 사용료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침해 기술에 대한 자산적 가치는 일반 손해배상의 원칙인 전보배상, 즉 수학적, 산술적 산정만으로 평가가 불가능하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손해배상액의 기준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일방 당사자의 손해배상액 입증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술가치 평가기관 등 제3의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소송은 실체적 진실을 구현하는 절차가 돼야 한다. 어느 일방의 증거 수집, 침해사실 및 손해액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소송상 사실과 실체적 진실이 어긋나는 결과가 초래돼서는 안된다. 국내 기업이 기술침해 소송의 무용론을 외치며 해외에 원정소송을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기술침해 분쟁의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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