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두 번째 퇴직을 했다. 두 달 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상임감사로서의 임기를 마쳤다. 중앙회에 다니기 전에는 30년 세월을 넘게 늘공으로 시계추처럼 다니다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소위 명예롭게퇴직했었다. 바쁜 세상사,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한 퇴직이었지만 스스로 명예롭다고 되새기며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했었다. 퇴직도 경험인가 보다. 두 번째로 퇴직하고서는 시간의 자유로움과 마음의 여유로움을 좀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즐겼던 것 같다.

가끔 있던 약속도 슬슬 없어지고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고민하던 어느 날, 스마트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뜬다. 대한상사중재원이라 한다. 명예롭게 퇴직하고 늘공생활을 청산하던 그 시기에 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이 순간적으로 떠 오른다. 건축 공사의 계약 관련 분쟁이 있는데 중재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요지의 전화다. 왕년에 공사 현장 감독도 하고, 공공 건설공사 관련 제도와 원가계산 등 실무 경력이 있다. 계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이었을 뿐 아니라 책상서랍 어딘가에 고고히 존재하고 있을 박사학위증까지 생각이 미친다. 바로 승낙했다.

공공공사 계약금액 분쟁 심리

입찰中企의 고단한 현실 생생

갑을 동일한 책임·의무 유감

그리고 받은 것이 중재 신청서와 당사자들의 답변서, 준비 서면 등등의 한 뭉텅이 서류들이다. 찬찬히 읽어보니 익숙한 내용이다. 중재 대상은 공공공사의 공사계약 금액에 관한 것이다. 공공기관과 시공사가 서로의 과실을 주장하며 밀고 당기는 분쟁의 프로토타입이라고나 할까. 건설업체가 발주자인 공공기관을 상대로, 공사비 적어서 공사를 못 하겠으니 낮은 공사비로 입찰에 부친 공공기관은 과실을 인정하고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중재를 요청했다.

공공기관의 주장은 읽어볼 필요도 없다. 명예퇴직하기 전, 늘공이자 발주자일 때 이런 식의 분쟁이 생기면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바로 그 논리였기 때문이다. ‘건설업체가 자기 책임하에 입찰하고 계약까지 끝내놓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공사비를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계약에 강제성이 없었던 만큼 신청인의 중재 신청을 모두 기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심리일.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중소 건설기업 이사의 지친 얼굴을 보면서 현장의 어려움과 현실의 막막함 등등 하소연을 들었다. 공공기관이 공사입찰을 하면서 금액을 이렇게 낮게 제시할 줄 몰랐다. 공공기관이라는 이름의 무거움과 공신력을 믿고 입찰했는데 공사를 할수록 적자 폭이 확대되니 도저히 공사를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인건비와 자재비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다. 공사비를 계산해 보고 입찰했다면 좋았겠지만, 작은 기업들이 그럴만한 여유가 있는가? 한마디 한마디가 작금에 중소기업인들이 겪는 현실의 고단함과 복합위기로 인한 고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다.

중재 심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스친다. 누군가의 사연을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을까? 들었다고 한들 상대방의 처지에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 중소기업인은 적자가 날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입찰하고 계약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공기업과 작은 중소기업 간의 계약을 동일한 책임과 의무를 지워서 재단할 수 있을까? 이번 중재에서 법과 규정은 어느 평면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걸 보니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회사라는 조직과 그럴듯한 지위를 다 내려놓고 나니 이제야 세상이 보이는 것인지. 일도 생각도 가을만큼 깊어간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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