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한 (세명대학교 영화웹툰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최종한 (세명대학교 영화웹툰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학과에 새내기들이 들어오면 첫 워크숍 수업시간에 꼭 해보는 과제가 있다. ‘나만의 물고기한 마리를 그려보라는 것이다. 10분 정도 시간 동안 학생들은 저마다 머릿속에 있는 물고기들을 호기롭게 그려낸다. 귀여운 니모를 그리기도 하고 인어공주를 스케치해 놓기도 한다. 또 어떤 학생은 <쥐라기 공원>에 나올 법한 전설 속의 바다 괴물을 멋지게 그려 놓고 교수님의 평가를 의기양양하게 기다린다.

10분 동안 학생들이 단단히 그리지만, 나는 단 10초 만에 제일 잘 그려낸 물고기를 뽑아낸다. 바로 어떤 뷰포인트에서 나만의 물고기를 그렸는지가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95%의 학생들은 모두 옆에서 본 물고기를 그려낸다. 우리가 접시 위의 생선을 볼 때의 그 물고기 이미지다.

아주 간혹 길쭉한 타원에 물고기 눈이 양옆에 달리고 가운데 입이 동그란 물고기를 앞에서 본 물고기라며 들어 보이는 학생이 있다. 바로 이 학생의 그림이 그날 칭찬의 대상이 된다. 남과 다른 뷰포인트, 곧 나만의 뷰포인트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비록 스케치 실력은 니모나 인어공주, 괴물에 비해 떨어지더라도, 관객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시선이 창작자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이처럼 다양한 나만의 뷰포인트에서 감상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는 거대한 서사와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라라랜드>는 음악과 미장센 그리고 색채로,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단면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얼마 전 개봉해 현재 승승장구 중인 <한산-용의 출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서사로도 물론 감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거북선이 등장해 조선 수군과 왜군이 뒤엉켜 장관을 연출하는 압도적인 해전장면에 눈길이 갔다.

차별화된 관점이 핵심포인트

이순신 학익진은 성공 롤모델

中企만의 혁신·경쟁력 발휘를

학익진의 위용과 충파로 배들이 깨어지며 파도가 으르렁대는 한산 앞바다 전투장면들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조금 찾아보니 이 모두가 세트 촬영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창조해낸, 해전이지만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데 더욱 놀랐다. 1700만 명이 관람한 전작 <명량>은 바다에 배를 띄워 촬영한 일부 장면들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 <한산-용의 출현>100% 물 없이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진행된 세트 촬영의 결과물이었다. ‘보이지 않는 파도를 보이게 만드는 힘’, ‘영웅의 서사보다 해전 장면 볼거리에 힘을 실은 감독의 남다른 뷰포인트’, 바로 이 점이 <한산-용의 출현>에서 내가 발견해낸 감상 뷰포인트다.

물 없는 해전장면 외에도 같은 관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또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의 청사진을 그리며 장군 한명 한명을 그 보이지 않는 능력에 따라 진 속에 배치하는 장면이다.

누구는 어떤 능력이 있으니 이 자리에 적합하고, 다른 누구는 무엇이 조선 최고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아무개는 성정이 어떠하니 옆에 누구로 보좌시키고를 읊조리며 학익진의 최종 청사진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완성해간다.

이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장군 머리 속 뷰포인트가 밖으로 드러나며 휘하 장수들에게 공유되고 리더십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한산대첩의 압도적이고 완벽한 대승의 기초가 바로 이 학익진 작성에서 시작되고 있다.

고환율, 고금리, 원자재가 급등 등 현재 우리 경제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고 뿌옇다고들 한다. 대기업도 그렇겠지만 특히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은 더더욱 안개 속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일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뷰포인트를 바꿔서 보면 주변이 뿌옇다고 해서 우리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과거의 시간까지 뿌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분명한 성과와 축적된 경험이 있고 각 분야에 대한 기술력과 자신감만은 머릿속에 명쾌하고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경쟁력들을 꺼내놓고 남과 다른 나만의 뷰포인트를 숙고해 이순신의 학익진 그려내기와 같이 나만의 물고기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그려보면 어떨까? 안개는 곧 걷히기 마련이고 나만의 뷰포인트는 언제나 신선하며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라는 나의, 그리고 조직의 혁신과 경쟁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