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칼럼니스트
김광훈 칼럼니스트

순전히 우연히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한 적이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존 웨인 추모글을 레이건이라는 사람이 잡지에 기고한 걸 봤는데 그가 무명인 줄 알았다. 인명사전을 찾아보니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두 번이나 역임한 거물이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에 대통령이 된 그가 우리 부대를 공식 방문했고 몇 주 후엔 그와 악수하는 백악관 공식 사진도 받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도 지금 대선정국이 한창이라 레이건 대통령이 출마 선언 당시 한 연설이 떠올랐다. 그 자신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입지를 다진 때문이었는지 예전에 미국 이민자가 반드시 거친다는 엘리스 섬 바로 옆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공식 대선 일정을 시작했다. 그의 연설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것과 부채를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수소폭탄 이야기도 나왔지만, 뜻밖에 결론은 망각이었다. 당시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중엔 그 의미를 알게 됐다. 하지만 좀 더 살아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기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관계에서 주로 비롯되는데, 이 관계는 상대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기대가 어긋날 때 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일이 많다. 어릴 적 채근담에 은혜가 도리어 원망을 낳는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살면서 절감하곤 한다.

여야 대선 후보의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모두를 실행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엔 금과옥조란 없다. 시대가 변하고 국제질서와 환경이 달라지면 정책과 제도도 바꾸고 혁파해야 한다. 사소한 제도 변화는 평소에 이뤄지는 입법활동으로도 가능할 테지만 대선은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의 큰 물줄기를 돌리는 일이다.

이런 정책과 제도의 변화는 기업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들에겐 직격탄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들은 그래도 수억 년을 거뜬히 생존해 온 곤충들처럼 단단한 외골격으로 몸이 보호돼 외부의 공격과 수분 손실에 대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속살이 그대로 외기에 노출돼 있다.

전자업계만 해도 EICC(전자산업 시민연대)RBA(책임감 있는 비지니스연합)로 더욱 확대 개편되면서 이를 준수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추가적인 부담이 늘어났다.

탄소중립도 마찬가지 상황일 듯싶다. 인류의 공영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지만, 산업 구조를 반영한 접점을 찾아 성의와 노력을 다하되 실리를 잘 챙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산업 현장과 관련된 국제회의에 참가하면서 느꼈다.

여야 모두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은 이해하지만, 우리나라와 기업은 유한한 정권과는 비교도 안되게 영속적이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다.

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새로운 제도 실시에 따른 영향 분석에선 자주 허점이 보인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다.

우리 국민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시대 조류에 맞는 현명한 선택을 하겠지만, 무리한 공약으로 인해 국민과 시장에 그릇된 시그널, 즉 잘못된 기대를 갖게 하면 그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우리는 그 폐해를 여러 나라에서 보고 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