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는 나노사회, 희소 아이템이 경쟁력
‘X세대 형·언니들의 귀환’ 소비시장 쥐락펴락
2007년부터 소비 트렌드를 발빠르게 분석해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달 신간인 `‘트렌드코리아 2022`’를 발간했다. 지난 6일 열린 출판 기념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김난도 교수는 “2022년 트렌드 키워드의 중심은 나노 사회”라면서 “이는 극도로 세분되고 파편화된 사회를 뜻하며 다른 트렌드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한편,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난도 교수는 2022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10대 트렌드의 앞글자를 따 `‘TIGER OR CAT’(호랑이 또는 고양이)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매년 이듬해의 띠(12간지)를 활용하는 게 이 책만의 고유 특징이다. 참고로 소의 해인 올해는 ‘카우보이 히어로(COWBOY HERO)`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위기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 기업보다 진화 속도가 더 빠른 소비자들의 니즈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따라 거침없이 포효하는 호랑이가 될지, 고양이가 될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나노 사회`와 함께 김 교수가 제안한 내년 10대 트렌드는 △투자와 투잡에 혈안이 되는 ‘머니러시’ △상품 과잉 시대에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득템력’ △도시에 살면서도 소박한 촌스러움을 추구하는 ‘러스틱 라이프’ △고통을 감수하는 대신 즐겁게 건강을 지키는 ‘헬시플레저’ △X 세대(1965~80년생)를 시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바라본 ‘엑스틴 이즈 백’ △자기 관리에 철저한 신인류를 뜻하는 ‘바른생활 루틴이’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실재감 테크’ △소셜미디어(SNS) 발달에 따른 상시 쇼핑 시대를 알리는 ‘라이크커머스’ △자기만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내러티브(서사) 자본’이다.
나노사회와 머니러시, 득템력
우리의 일상은 극도로 세분화되고 파편화된 `나노사회`라 볼수 있다. 가족과 공동체가 파편화된 세상에서 오롯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돈을 좇고(머니러시) 부를 과시하는 `득템`에 올인한다. 값비싼 명품 브랜드보다는 갖기 어려운 희소템을 얻는자가 `승자`다.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 얻기 어려운 희소 상품을 차지할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이 바로 `‘득템력’`이다. 이미 인기가 높은 한정판 운동화(스니커즈)를 정가보다 비싸게 되파는 스니커테크는 10~20대 소비자에게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운동화 리셀(재판매) 시장은 2030년까지 300억달러(약 35조5050억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스틱 라이프와 바른생활 루틴이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 각자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러스틱 라이프(시골의 소박한 삶)를 즐기며 시골스러움에서 위안을 얻는다. 촌스럽다고 생각한 옛것들도 `힙`(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해지고 있다.
전통 민요 `뱃노래`를 힙합 버전으로 편곡한 노래를 배경으로 갯벌 주민의 일상을 보여준 영상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산`편’은 공개한 지 1개월 만에 조회수 3454만회를 기록했다. 어떤 이는 코로나19로 재택이지만 출근 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한다. 회사에 가지 않 지만 상관없다. 루틴(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을 유지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루틴을 통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신인류를 `바른생활 루틴이(루틴+어린이)`라 부른다. 이렇듯, 우리는 어떠한 생활 방식이어도 그 속에서 소소한 자신감과 미세 행복을 찾는다.
엑스틴 이즈 백
한동안 잊혀 있던 X세대 형, 언니들이 이제 화려하게 복귀한다. 소비의 양적 규모나 질적 파급력으로 볼 때 소비 시장에서 주요 세대는 1965~1979년생인 `X세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1970년대 엑스틴(X-teen)이다. 엑스틴은 사회의 허리이자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대한민국 소비 시장을 이끌고 갈 것이다.
라이크커머스와 실재감 테크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로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본다. 친구가 올린 밀키트와 화장품이 좋아 보여 그냥 구매한다. 따로 쇼핑몰에 들어가는 건 귀찮다. 이런 소비는 `좋아요(Like)`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로 `‘라이크커머스`’라고 부른다. SNS의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다시, 잠들기 전 `로지(가상인간)`의 인스타에 들어가 그녀의 일상을 체크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녀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상관없다. 왜냐? “우리는 세계관이 같으니까.”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실재감테크`가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앞으로 소비자를 붙잡을 수 있는 기술의 핵심은 “누가 더 실재감 있게 만드냐”에 있다.
헬시플래저
친구가 건강을 챙겨야 한다면서 `홍삼`을 권한다. 이참에 몸에 좋다는 산양삼과 무화과도 챙겨 먹어야겠다. 유튜브를 틀어 좋아하는 운동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같이 운동한다. 집에서 간단한 도구를 가지고 운동했을 뿐이지만 땀이 흘러 기분이 개운하다.
건강은 관심·취미 분야의 `스테디셀러`였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건강과 면역은 최우선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젊은 층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을 두면서 건강관리 방식도 변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해보자는 헬시플래저가 확산하고 있다.
내러티브 자본
내러티브를 가진 사람과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트렌드는 더욱더 강화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이야기)이 중요한데 내러티브는 스토리텔링이 이어진 훨씬 큰 개념이다. 특히 대선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2022년은 이러한 `내러티브 대전(大戰)`이 될 것이다.
강력한 서사(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회사의 매출도 주식도 오를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사례도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원대한 꿈을 주가수익비율(PER)에 빗댄 ‘PDR(Price Dream Ratio)’이라는 신조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