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000”

언론 기사를 읽다 보면 등장하는 문장이다. 한국형 잠수함, 한국형 반도체, 한국형 인터넷. 한국형(韓國型)이란 본디 외국에서 온 것이 한국식에 맞게 적응했거나, 한국의 고유한 유무형의 존재가 외국과 비교해 뚜렷하게 독자성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한국의 여러 조건, 이를테면 기후와 지형 같은 천혜의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의 성정에 맞게 변화된 것들을 이른다. 먹는 음식에도 한국형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짜장면도 한국형이다. 소스에 전분을 넉넉히 풀어서 면 온도를 잘 보존하고, 더 높은 열량을 확보하는 게 한국형 짜장 소스의 특징이다. 소스의 양이 중국 짜장면에 비해 많다 보니, 같은 소금양이라고 해도 한국식이 짠맛을 덜 느끼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중국식과 달리 단맛을 강조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다. 우리의 이런 짜장면은 한동안 한국에 오는 중국계 방문객들에게 외면받았다. 본토 맛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 바람에 한둘씩 맛을 들이면서 중국 대도시에도 먹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한국 교민과 학생이 주 고객이었는데, 이제는 현지인도 꽤 좋아한다고 한다. 짜장과 함께 중국집의 양대 강자 짬뽕도 물론 한국형이다. 중국 짬뽕(탕미엔)은 매운맛이 지배적이지 않고, 일본 짬뽕은 아예 매운맛이 없다. 한국은 매운맛이 디폴트라 하나의 확고한 스타일이 됐다. 어떻게 맵냐를 두고 주방장들끼리 경쟁한다. 그러다 보니 매운맛의 세계가 확장되고 복잡 다양해졌다. 그런 깊이가 결국 한국 짬뽕의 무기가 됐다.

한편, 당면은 중국인들이 아주 많이 먹는 국수의 일종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당면은 국수로 보지 않는다. 잡채의 요리재료다. 원래 한국의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고기와 채소 등으로 만드는 전통 요리로, 임금의 상에도 올라갔던 고급요리다. 중국의 당면이 한국에 전해지고, 이내 한국 잡채에 적용됐다. 먼저 당면은 저렴한 재료다. 잡채에 섞어서 만들어보니 재료비가 확 내려간다. 덕분에 맛있는 잡채의 확장판을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됐다. 임금이나 부자가 아니더라도.

서양요리도 반드시 한국형이 있다. 우선 돈가스가 그렇다. 한국의 돈가스는 사실 돈가스가 아니다. 돈가스는 일본에서 서양요리를 받아들여 변화시킨 것이고, 이름도 돈가스(かす)가 됐다. 원래 이름은 영어로 포크커틀릿이다. 한국은 후자에 가깝다. 두툼한 일본식과 달리 넓고 납작하게 펴서 튀기고, 짙은 색의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리는 것만 봐도 유럽형이다. 돈가스라고 불리는 이름은 일본, 요리 방식은 서양형인데 한국식을 가미해 오늘날 한국형 돈가스가 됐다. 바로 쌈장과 풋고추(청양고추)를 곁들여내는 방식이다. 여기에 깍두기나 김치, 단무지도 준다. 접시 위에 나란히 마요네즈 샐러드와 김치, 단무지가 놓여 있는 걸 보면 한국형이란 무엇인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스파게티, 즉 파스타도 한국형이 대세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전공했는데 한국의 파스타와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카르보나라는 서로 전혀 다른 요리다. 이름만 같을 뿐, 유사한 점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한국형으로 소스도 넉넉히, 매운맛도 과감하게, 크림도 과감히! (이탈리아 파스타 중에 크림 쓰는 건 0.00001%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피클 반찬을 절대 내지 않는다.

피자는 또 어떤가. 고구마(리치), 카망베르 크림, 할라페뇨 피자 같은 건 한국밖에 없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뭐.

, 무엇을 또 한국형으로 만들 것인가. 거기에 어쩌면 돈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의 일상에 깃들어 있는 한국형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나아가, 우리 모두 한국형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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