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칼럼니스트
김광훈 칼럼니스트

20년 전 어느 다국적 기업에 부장으로 경력 입사한 적이 있다. 그 이전에 다니던 기업 문화와는 크게 달랐다. 합리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관행도 적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다른 점에 대해 틈나는 대로 이야기를 했고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어느새 상당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중학교 시절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버스를 탈 때 한 가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버스 기사가 면목동에서 사당동까지 매일 같은 코스를 운행한다는 점이었다. “아니 그건 너무 단조로운 일이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서울에 산 지 오래된 사촌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오래전 미국인 고객과 이태원에 갔을 때였다. 그가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을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저 많은 가게에 다 주인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인지 부조화에 대한 이론이 많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것 중 하나는 그 틀에 갇혀 있는 사람의 시야는 늘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관행, 미국의 네 배가 넘는 자영업 인구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정말 키가 컸지만, 성인 키의 두 배가 될 수는 없다. 네 배란 이렇게 확연한 차이다.

우리만의 사정이나 풍토가 있을 수 있지만,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지금은 세계적인 추세를 도외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런 손톱의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는 한 단계 더 높은 G7으로 도약할 수가 없다.

요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거나 시장의 상황을 무시하거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일이 유독 많아진 느낌이다. 부동산 관련 제도는 차치하고라도 중소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와 법이 속속 집행되고 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운용의 묘가 없다.

비즈니스에서 계약서는 지상 명령이지만, 인간이 힘을 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늘 상정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도 그중 하나인 데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듯하다.

필자도 올해 처음으로 개인 사업자로서 소액이지만 세금을 내면서 호랑이에게 남편과 아들이 물려 죽으면서도 세금 때문에 산속에 산다는 가정맹어호를 실감해봤다. 지금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들에겐 일시적으로 피신할 산속도 없는 시대다.

각자도생을 맡기기엔 이들 모두는 수도 많고 귀중하기도 한 우리 국민들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품는 것은 주요 산업이나 신산업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고 특히 조선업의 부활은 제조업 한국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다. 일감을 잃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조선(造船)의 명장들을 보면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던 이순신 제독을 믿고 다시 돌아와 신화를 함께 썼던 민초들이 생각난다. 가격 경쟁력 때문에 동남아로 갔던 애니메이션 산업이 한국인의 손재주 때문에 다시 돌아왔던 일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이 완전 자동화되기 전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칩을 검사하고 정치(精緻)한 작업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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