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지난 23일로 종료됐다.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1명이라도 사망하면, 안전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업주가 최소 1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되는 법이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이 마련되기까지 무려 6개월 이상이 소요됐으나, 이대로 수정없이 시행되면 현장의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35개 경제단체 및 협회는 공동 건의서를 제출하며 시행령 개정을 요청했다.

당초 시행령의 핵심 목표는 처벌 요건이 되는 사업주의 의무를 현장에서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법예고안에는 적정한 예산’, ‘충실한 수행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이 여과없이 담겼고, 사업주의 관리조치 범위도 안전보건 관계법령으로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30개가 넘고, 그 중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규정만 1200개가 넘는데 사업주가 알아서 준수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법 준수 의지가 높은 사업주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문가들조차 모르겠다고 하니 속 시원히 물어볼 곳조차 없다. 산업재해는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고 준수 범위도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재해발생이 무조건 사업주 의무 소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주가 막연한 불안감을 버리고 재해예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시행령안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우선 시행령안에서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대재해의 원인이 대표자의 책임범위에서 벗어날 경우 처벌을 면한다는 면책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안전보건 전담조직이 없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법의 주요내용이 실제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업종·규모·공정별 특성을 감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공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안전점검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다만, 아직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상 경영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고,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안전시설 투자나 점검 위탁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당장 내년 127일부터 이 법을 적용받는 50인 이상 기업이 5만 개가 넘는다. 그간 논의가 지연되면서 시행령이 최종 확정되는 시기는 빨라도 9월 중순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3~4개월 뿐이다. 이 기간에 중소기업이 법 준수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 시행령으로라도 특례조항을 신설해 50인 이상 중소기업에 최소 1년 이상의 준비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행령 입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주된 이유는 법 자체가 모호하고 처벌이 지나치게 과도하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도 필수지만, 법적인 형량의 형평성을 고려한 보완입법이 시급하다. 형법상 1년 이상의 징역형은 영리목적의 인신매매나 특수절도 등의 고의범죄인데, 어떻게 과실치사인 중대재해사고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할 수 있나! 최소한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으로 바꾸고, 중대재해사고의 성립 요건도 1년 이내 반복 사망시에만 엄격히 적용되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불안에 매일 밤잠을 설치는 사업주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산업현장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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