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재능보다 듬직함이 우선
소소한 걸 지켜가야 성장 지속
‘툭하면 이직’은 회사에 걸림돌

한 제과 명장(名匠)을 개인적으로 안다. 그는 평생을 바쳐 빵을 만들었다. 화려한 케이크, 카스텔라, 프랑스식 과자도 만든다. 그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빵이 뭐냐고 여쭸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식빵입니다.”

식빵은 제과점에서 그다지 좋아하는 품목이 아니다. 잘 팔리긴 하지만 별로 이윤이 없다. 부피는 크다. 잘 만들어도 태가 안 나고, 맛없으면 가게의 명성에 금이 간다. 당이나 유지, 기타 맛난 고명이 많이 들어가는 빵은 유통기한도 며칠은 가지만, 식빵은 말라서 금세 팔아야 한다. 늦게 제과점에 가면 식빵이 없어지는 이유도 잘 팔리는 것도 있겠지만 너무 많이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들이 제일 까다롭게 하기에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야 한다.

별로 이익은 없으나, 가게의 대표이자 얼굴인 빵이 식빵이다. 쿠키나 케이크를 팔아야 남는다. 빵은 부피가 커서 손님들이 뭘 많이 산 것 같지만, 가게 쪽에서는 큰 이익은 아닌 것이다.

작은 이윤이 남는 걸 잘 팔아야 빵집이 유지됩니다. 세상의 이치에요. 많이 남고 만들기 쉽고 그런 건 잘 안 팔립니다. 누가 매일 마카롱과 다쿠아즈와 화려한 케이크를 먹겠어요? 결국 식빵이지요.”살짝 찌릿한 전기가 왔다.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 일상의 반복, 별 거 아닌 것 같은 루틴,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태도, 상대에 대한 예의와 자세 같은 평범하고 소소한 걸 잘 지켜가야 사회생활이 이뤄진다. 그런 사람을 사회에서 요구한다. 조직은 높은 창의성과 재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조직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소리 없는 다수라는 사실을 식빵에서 깨달았다고나 할까.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요리사가 여러 명 있다. 다 개성이 다르다. 재주 많은 친구는 오래 같이 일하면 내가 편하고 좋겠는데, 종종 자주 옮겨다니는 버릇이 있다. 대우를 잘 해줘도 마찬가지다. 그는 천성적으로 끝없는 반복이 일상인 식당 주방의 루틴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손이 느려서 늘 걱정하던 요리사는 천천히 자신의 단점을 지워가더니,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친구가 됐다. 오래 근무하면서 식당의 모든 것을 다 꿰게 됐다. 반짝이는 재능이 세상을 끌어간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전적으로는 부인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재능이 진짜 재능일 때도 있다. 언제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친구. 그런 사람이 조직을 끌어간다. 느린 손은 매일 하다보니 빨라지게 됐고, 침착하고 여유 있으며 뚝심 있는 장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결국 식당의 에이스가 됐다. 주변의 동료 식당을 오랫동안 탐문했다. 똑똑하고 주방장의 총애를 받고 손 빠른 친구가 5년 후, 10년 후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주제였다. 상당수가 일찍 그 직장을 그만뒀으며,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생각보다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전언이었다. 초기에는 누가 봐도 그 재능으로 미뤄보아 성장이 빠를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통계를 내거나, 해당 인물을 쭉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일본 어느 유명한 투자은행의 한 동기그룹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지 오랜 기간 추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룹에서 두각을 나타내 일찍 진급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퇴사하고, 지금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평범하게 보였던 인물들은 그 회사에 남아서 남들처럼 진급하고 결국 간부로 기여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현대의 수많은 신사업분야는 에이스한 명이 회사를 먹여 살리고 세상을 바꾼다는 이론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 다 뉴 비즈니스도 아니고 첨단 산업도 아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업은 아주 전통적인 것들이다. 적어도 식당이며 빵집 같은 곳은 이 끌어간다. 그런 집이 살아남는다. 식빵은 곰이다. 듬직하고 우직하고 말이 없다. 그 곰이 멋진 빵집이 좋은 빵집이다. 명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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