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분기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던 엑손모빌이 지난해 224억 달러의 기록적인 손실을 입었다. 엑손은 작년 8, 30개 기업의 일원으로 92년간 지켜왔던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에서도 제외됐다. 엑손에게는 분명한 상처였다.

오랫동안 엑손모빌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아마도 석유 대기업 가운데 가장 탄탄한 사업자로 명성을 누려 왔다. 그래서 풍부한 현금을 앞세워 경기 침체기에 투자하고 호황기에는 그 결실을 누렸다. 회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엑손은 믿을 수 있는 석유 주식이었다.

엑손모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운이 수년간 기울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4월까지 무디스와 S&P 글로벌 모두 엑손의 부채를 이유로 불과 1년여 만에 2번째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압박의 가중과 엑손 역사상 가장 높은 부채 수준이 그 이유였다. 막대한 부채는 회사가 석유 및 가스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단행한 투자의 결과였다. 회사의 자본 대비 순부채 비율은 최근 5년 사이 16.5%에서 27.8%까지 치솟았고, 총부채 부담은 지난해에만 210억 달러 가까이 늘었다.

엑손모빌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엑손모빌은 오랫동안 앞으로 수십 년간 석유와 가스가 경제 성장의 중심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세계관을 신봉하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이동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엑손모빌의 경쟁사인 BP와 셸, 토탈 같은 기업들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줄이고, 풍력과 태양열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엑손모빌은 핵심 석유와 가스 사업 이외의 분야에 대한 투자를 미뤄왔다.

엑손모빌의 CEO 대런 우즈(Darren Woods)는 자사가 가지고 있는 저탄소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신규 사업의 출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다수의 회의론자들은 이런 방안들이 주의를 돌리려는 절반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엑손모빌은 내부 문제도 직면해 있다. 회사가 전체 직원의 15%(계약직 직원을 포함해 약 14000)를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직원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대런 우즈는 20203월 투자자들과의 통화에서 동종 경쟁업체들의 목표를 보기만 좋은 미인 대회라고 치부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덜 효과적인 사업자들에게 석유와 가스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사실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대신, 우즈는 이 문제를 좀 더 포괄적으로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다. 회사의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엑손모빌 대변인은 “2000년 이후 회사는 저배출 기술에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우리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해소하고 해결책에 동참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 5월 말 발표한 획기적인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석유와 가스전에 신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엑손모빌은 135년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회사가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궁금해 한다. 엑손모빌은 진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가?”

 

- 하제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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