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서오리지 , 15만㎡에 이르는 연꽃단지 장관… 비 그친 습지엔 생명체들 약동
안동 농암종택, 구름 내려앉아 진경산수 연출… 물소리·새소리는 힐링 그 자체

비가 오면 더 짙어지는 풍경들이 있다. 한여름의 녹음이 그렇고 더 힘차게 흐르는 강의 물소리가 그렇다. 여행할 때 비가 오지 않는게 미덕이라고들 하지만 비와 함께해 더욱 근사해지는 여행도 있기 마련이다. 올 여름, 낭만 가득한 우중 여행지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강원도 화천의 여름은 물빛, 하늘빛, 연꽃 빛이 어우러진 풍경화다. 화천과 춘천의 경계쯤 자리한 서오지리는 북한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춘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사북면 소재지를 지나 현지사 입구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서오지리다. 서오지리는 연꽃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7월이면 강변에 조성한 드넓은 연꽃단지에 연꽃이 피는데, 특히 비가 오는 날 연꽃에 맺힌 물방울이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가 연꽃단지 곳곳에는 연꽃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관찰 데크가 조성돼 있다.
비가 연꽃단지 곳곳에는 연꽃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관찰 데크가 조성돼 있다.

서오지리는 옛날 이곳에 살던 세 노인이 자신[]이 호미[]로 약초[]를 캤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1965년 춘천댐이 생기면서 습지 중 일부가 오염되자 이를 되살리기 위해 2003년부터 연을 심었다. 이후 지금은 꽃향기가 온 마을을 감싸는 연꽃단지가 됐다.

6월부터 꽃을 피우는 수련과 손톱만한 노란 꽃이 고운 왜개연꽃, 연꽃의 대명사인 백련과 홍련, 가시 돋은 큰 잎사귀가 인상적인 가시연, 작지만 사랑스러운 어리연꽃 등이 어우러진 연꽃단지는 그 넓이만 15에 이른다.

연꽃단지 곳곳에는 방죽, 징검다리, 관찰 데크 등이 마련돼 있다. 깔끔하게 조성된 데크는 연꽃잎을 더욱 가까이서 보기에 좋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곳 없이 사방이 트인 연꽃 바다는 오히려 비가 오는 날 걷기가 더 수월하다. 방죽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전망 데크에 서면 북한강이 반긴다. 강 하류는 춘천, 상류는 화천이다. 비가 그칠 무렵의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 같다. 생태가 살아난 습지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깃들어 산다. 물방개와 물장군, 참붕어, 미꾸리, 잉어는 기본이고 열목어와 버들치, 황쏘가리를 비롯해 물닭, 호반새, 뜸부기, 꾀꼬리, 왜가리 같은 조류도 반갑다.

비가 와 더욱 짙어진 녹음이 화천 숲으로다리를 중심으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비가 와 더욱 짙어진 녹음이 화천 숲으로다리를 중심으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화천에 가면 서오지리와 함께 파로호 산소 100리길도 꼭 들러보자. 파로호 산소 100리길은 화천의 청정 자연을 대표한다. 산소길 중 백미로 꼽는 구간이 숲으로다리 일대다. 수면에서 한 뼘이 될까말까 한 높이로 나무다리가 길게 이어져 물 위를 걷는 것만 같다. 1.2km 길이의 다리는 울창한 숲으로 연결된다. 물에 비친 산과 숲, 하늘과 구름, 마을이 어우러진 풍광이 걸작이다.

서오지리, 숲으로다리와 함께 화천 3대 감성 여행지로 꼽는 거례리 수목공원의 사랑나무도 볼 만하다. 물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이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또한,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농암종택은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다.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때가 묻은 긍구당의 넓은 마루에 앉아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농암 이현보는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시조 작가다. 조선시대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 사상 강호 시조 작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어부가로 익숙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은 본래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에 있었는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로 현재 위치로 이축된 것이다. 1996년 농암의 17대손 이성원 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10여 년 동안 여기저기 흩어진 종택과 사당 등을 한데 모아 이룬 것이 지금의 농암종택이다.

분강서원에서 바라본 농암종택과 청량산 줄기. 안개가 옅개 깔려 운치를 더한다.
분강서원에서 바라본 농암종택과 청량산 줄기. 안개가 옅개 깔려 운치를 더한다.

대문을 넘어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면 긍구당이 나온다. 긍구당(肯構堂)은 농암 이현보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의 별채로,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다. 긍구당 마루에 오르면 낙동강 물소리가 시원하다. 나무에 가려 낙동강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만 들어도 유장하게 흐르는 강줄기가 떠오른다.

긍구당에서 나오면 농암 선생을 모신 분강서원이 있고, 좀 더 강변으로 가면 애일당과 강각이 있다. 애일당은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농암이 지은 건물이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 지었다. 선생은 부친을 포함한 노인 아홉 분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전해진다.

애일당 뒤에는 강각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강각(江閣)에 오르면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낙동강과 벽련암이 펼쳐진다. 이곳은 가장 근래에 지어진 곳이지만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풍경이 좋아 숙박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다. 강각에서 강변으로 내려오면 퇴계가 집에서 청량산 갈 때 걷던 길인 퇴계오솔길(예던길)이 이어진다. 낙동강을 따라 조붓한 길을 걷다가 공룡 발자국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발길을 돌리는게 적당하다.

농암종택이 있는 가송리에서 남쪽으로 20분쯤 달리면 안동군자마을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산기슭 경사면에 고택이 옹기종기 모였고, 뒤로 미끈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이 고풍스럽다. 농암종택과 더불어 하룻밤 묵어가기 좋은 고택이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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