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융복합이 산업을 지배한다. 제품과 산업의 융복합 사례는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리고 융복합은 아예 새로운 산업을 이끈다.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는 전지, 앱 등과 결합해 모빌리티라는 산업으로 진화 중이다. 기업도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인터넷 포털회사와 대형마트가 손을 잡고, 공장 없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등장했다. 함께해야 쫓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융복합 시대의 패러다임은 협업이다.

새삼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정보를 갖고 있다. 올바른 정보를 통해 융복합 시대를 선도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부분 1962년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제정을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원년으로 알고 있다. 협동조합의 시초는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한 1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동법은 쌀로 공물을 대신하는 제도다. 대동법 이후 정부의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생겼고, 공인은 공계를 조직했다. 예를 들어, 대동미로 소금을 사서 정부에 받치는 공인이 생겼고, 이들이 모여 공계를 만들었다. 바로 이 공계가 오늘날 업종과 지역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의 시작이다.

공인이 받는 물품 가격을 공가라고 한다. 보통 공가는 시장가격의 3배였다. 언뜻 보면, 대단한 특혜다. 그러나 공가엔 공인이나 공계가 수행해야 할 의무와 역할이 있었다. 공인은 목록에 없는 물품, 예를 들어 얼음도 조달했다. 그리고 과거시험에 드는 비용을 대기도 했다.

혹자들은 중소기업협동조합 하면 단체수의계약을 떠올리며 비난한다. 경쟁을 배제한 지나친 특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체수의계약이 있었기에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가능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활동이 가능했다.

산업활동이 협동조합에 부여된 의무와 역할이다. 과거 공계가 행했던 그것과 같다. 이러한 의무와 역할, 즉 산업활동은 한국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유럽의 길드와 성격이 다름을 의미한다. 길드는 산업화와 함께 쇠퇴했지만 한국의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산업화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단체수의계약이 폐지되면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의무와 역할도 사라졌고,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

지난 4월부터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중소기업자로 인정받았다. 협동조합도 여타 중소기업처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기존의 협동조합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인 융복합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있다. 기존의 협동조합은 같은 업종끼리 모여있어 융복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우리는 융복합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흔히 제품은 연구·개발, 디자인, 제조, 유통, 마케팅, 서비스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판매된다. 각각의 과정을 업무또는 기능이라 칭한다. 업무별 또는 기능별 협동조합이 설립할 필요가 있다. 가령, 연구·개발 협동조합은 각기 만드는 제품은 달라도 연구·개발에 장점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모여 만든 조합이다. 이들 기업은 연구·개발 업무가 부족한 다른 업종의 중소기업과 협업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융복합의 결과물이 탄생한다.

그리고 연구·개발 협동조합은 국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주체가 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개별기업에 중복해서 지원하는 비효율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연구·개발의 결과는 제조 협동조합, 마케팅 협동조합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성공사례가 쌓이면 연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창업도 기대할 수 있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자동차 제조가 모빌리티 산업으로 진화하고, 미래차의 현실화가 빨라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자동차 부품 수요는 많이 감소한다. 변속기 및 파워트레인의 경우 부품 수요의 4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가만히 앉아서 통곡의 벽을 마주하는 것보다 융복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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