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199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포스트 기자로 일했던 게일은 자신의 집에서 무려 43차례나 흉기로 찔려 숨진 상태로 발견된다. () 경찰은 인근을 배회 중이던 윌리엄스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수사과정에서 윌리엄스의 여자친구, 윌리엄스의 직장 동료로부터 윌리엄스가 내가 게일을 죽였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윌리엄스는 계속해 무죄를 주장했지만 검찰은 강도살인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사형을 선고하면서 2017822일을 사형집행일로 결정한다. 그런데 사형 집행을 불과 4시간 앞두고 그레이튼스 주지사는 사형 집행정지(모라토리엄)를 명령한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한 결과 윌리엄스의 지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지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모라토리엄은 전쟁, 공황 등으로 인해 경제상황이 악화돼, 채무이행이 어려워진 경우 일정기간 동안 채무의 이행을 유예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경제적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사형과 같은 형사처벌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도 모라토리엄이라고 한다. 실제로 2007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EU가 제안한 사형 집행유예(모라토리엄)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형벌의 집행유예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행정처분의 영역에서도 소송을 통해 처분의 적법 여부가 판가름될 때까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모라토리엄 제도가 존재한다. 만약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지 않는다면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이 지나 이미 처분을 다 받게 된다면 굳이 처분의 위법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도 집행정지의 목적이 소송에서 판결을 받을 때까지 그 지위를 보호함과 동시에 후에 받을 승소판결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은 법률적으로 행정처분이 없었던 상태로 되돌리는 효과가 있으며, 집행정지 결정에 위배해 이뤄지는 입찰참가제한, 거래정지, 계약체결거부, 감점 등의 조치들은 그 하자가 중대해 무효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행정처분의 형식으로 발령되는 조달규제에 있어서도 모라토리엄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미처 인용 결정을 받기 전에 진행돼 발생한 불이익 조치다. 처분 결정 후 불과 7일 이후부터 처분 효력을 개시하는 정부조달기관의 실무에 비춰보면 법원의 임시 결정을 받아내지 않는 한 충분히 우려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담당 공무원이 집행정지 신청사실을 고려해 결정이 있을 때까지 불이익 조치들을 잠시 유예해주면 좋으나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감점,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에는 업체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실례로 조달기관 A는 주무관청인 B기관으로부터 업체 C에게 직접생산확인취소처분을 부과했다는 통지를 받는다. 관련 법률에는 직접생산확인 취소처분을 받는 경우 C와 관련된 조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지하는 추가적인 불이익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A기관은 조달계약 전부를 해지했고, C사는 그로부터 이틀 후 법원의 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는다. C사는 집행정지제도가 마련된 취지를 고려해 계약해지의 철회를 요청했지만, A기관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명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통해 구제 받으라고 회신 한다. 결국 C사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계약 해지를 막을 수 있었다.

거래정지 조치와 같이 법원 판결로 새롭게 행정처분성을 인정받는 조달규제의 유형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의 악용 사례를 거론하며 집행정지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잘못된 처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고 이를 다투는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집행정지제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보호 수단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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