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탄소 제로시대에 맞춰 너나 할 거 없이 수소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탄소 제로 트렌드는 화석연료를 줄이자는 것이다. 수소사업은 탄소 제로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에너지사업 중 하나다.

석유로 먹고 사는 정유업계에겐 가희 충격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정유업계는 그동안 화석연료를 정제하고 가공해 만든 상품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정유 사업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정유 4사는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과 함께 수소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SK는 연초에 중대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 5년간 약 18조원을 투자해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수소산업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선봉대 역할을 하는 조직체인 수소사업 추진단도 신설됐다.

무엇보다 SK이노베이션은 수소사업을 기존 석유화학 공정과 주유소 등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에너지는 지난 1월말에 경기 평택시에 있는 LPG충전소 부지에다 첫 번째 수소 충전소를 오픈했다. 기존 에너지 충전 시설마다 친환경 에너지 플랫폼인 수소 충전소를 하나둘 테스트하는 모양새다.

GS칼텍스는 한국가스공사와 손을 잡았다. 최근 양사는 액화수소 생산과 공급 사업 MOU를 맺었다. 주된 협력 내용은 액화수소 플랜트, 액화수소 충전소 등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액화수소 플랜트의 경우 오는 2024년까지 완공해 연산 1만톤 규모로 가동할 방침이다. 연산 1만톤은 수소 승용차 기준 약 8만대가 연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해당 플랜트에서 만든 수소를 수도권과 중부권에 공급하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GS칼텍스는 수소 충전소 인프라 확충에 가장 빨리 나서고 있다. 이미 지난해 5월 현대자동차와 함께 서울 강동구에 수소 충전소를 오픈했다. 올해는 제주에 충전소를 낼 예정이다. 일반 자동차 말고도 버스와 트럭 관련 특수차의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 움직임도 빠르다. GS칼텍스는 특수목적법인 코하이젠과 전남 여수, 경기 광주에 관련 충전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의 수소 사업 진출은 지난 3월 에너지 기업 FCI의 지분 21%를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FCI는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특허를 40건가량 보유한 한국-사우디 합작기업이다. 여기서 연료전지라는 것은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화학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를 말한다. 요즘 수소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장치다.

현대오일뱅크은 발전사와 협력 중이다. 한국남동발전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추진을 검토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수소를 생산해 공급하고, 한국남동발전은 연료전지 발전소 운영 노하우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정유 업계가 수소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것도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혈안이다. 문제는 정유업계가 특히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량이 많은 업종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7910만톤 대비 24.4%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정유 4개사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기름기를 쫘악 빼기 위해 정유업계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대적 흐름과 정부의 방침에 따른 위기 대응은 아니다. 수소 발전시장만 놓고 보면 정부가 추정하는 2040년 국내 수소 연료전지 발전량은 약 8GW. 이는 현재보다 12배 늘어난 수준으로 약 7조원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기존 충전 인프라(주유소 등) 시장을 대체하는 시장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어찌보면 수소 사업은 정유업계의 100년 먹거리 시장일지 모른다.

 

- 김진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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