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만 말해봐.”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설문을 돌린 적이 있다. 어떤 작업에 쓰기 위해서다. 온갖 음식이 나왔다. 콩나물국, 두부부침 같은 간단하지만 영혼 있는 음식이 거론됐고 짜장면, 짬뽕 같은 중국음식, 초밥과 돈가스 같은 일본 유래 음식, 스파게티도 등장했다. 그중에 어머니 밥이라는 다른 각도의 답도 있었다. 어머니가 만들면 다 맛있다는 얘기다. 그 친구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답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사실, 어머니 밥이란 우리가 갈망하는 음식이다. 기억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어머니가 최고의 요리사일 리도 없다. 어머니와 같이 살 때는 모르다가, 이제야 그 소중함이 되새겨진다. 이런 어머니 밥은 우리의 로망이어서, 외식 아이템에서 아주 중요하다. 한 거대 포털에서 한동안 캠페인을 벌인 주제가 있는데, 전국의 백반집이었다. 백반집이란 곧 집밥을 의미한다. 거창하지 않고, 마치 어머니가 뚝딱 차려내는 듯한 음식이라야 백반집답고, 더 장사가 잘 된다. 어머니나 엄마손맛을 가게 상호로 쓰는 가게도 많고, 한 발 물러서서 이모나 할머니 상호가 많다. 이런 집의 십중팔구는 백반집이다. 편하고 자연스러우며, 가격도 싸고, 인정 있는 집이어야 조건이 맞는다. 내가 일하던 이탈리아의 동네 식당 중에는 꼭 이런 표현을 하는 곳이 있다. ‘카사링가의 집’.

카사링가란 이태리어로 가정주부를 의미한다. 엄마의 맛이란 뜻이다. 그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도 가격과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쟈창차이라는 식당 장르가 있다. 집밥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이런 집에 사람들이 몰린다. 언제든 먹어서 부담이 없는 밥, 그것이 엄마의 손맛인 셈이다.

백반은 유난스러운 음식이 없다. 푸짐하지만 싸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다. 두부, 콩나물, 김치, 고등어나 새끼 굴비, 더러 서양음식이 나오더라도 흔한 소시지나 햄이다. 백반은 하얀 밥이란 뜻이지만, 밥에 곁들여 반찬이 몇 가지 나오는 전문식당 이전의, 간이식당을 의미한다.

무허가 식당이 많았던 1960년대, 70년대에 번성하기 시작했다. 노동하는 인구가 늘고, 식당의 수요는 많았지만 번듯한 집이 없었다. 그냥 집에서 마루나 방 한 칸을 비워 집밥하듯이 밥 짓고 반찬 몇 가지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무허가이니 상호가 따로 없고, 이모 같은 분이 있다고 이모집, 고모 같으면 고모집이라고 불렀다. 상호가 없으니, 손님들이 구별하기 위해 지어 불렀고, 그게 나중에 정식 상호가 됐다. 그런 역사를 가진 것이 바로 백반의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도 백반은 가격 한계가 있다. 8천원, 9천원이 되면 집밥다운 기운이 없어진다고 믿는다. 임대료 차이가 있어서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암묵적 룰이 생긴 것이다. 이를 유행어로 국룰이라고 하던가.

백반은 그냥 밥이지만, 위에 열거한 것처럼 여러 가지 룰이 있다. 푸짐하다, 국이 아니고 찌개를 주문하면 1천원 추가, 밥은 대개 1번 정도는 무료리필, 밥은 많이 담아내며, 물은 셀프!

밥집, 백반집이 점점 줄어든다. 이런 힘든 노동을 지탱하던 요리노동자의 구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개 가족노동이었는데, 요즘 식구들은 집안일 잘 안한다. 취직해서 살지 누가 고단한 밥집 노동을 감수하겠는가. 연세가 들어서 할머니가 은퇴하기도 한다. 임대료도 오른다. 외근하다가 한 상의 백반을 먹고 싶어도 찾기 힘들다. 일품요리가 더 많아졌다. 백반집의 무한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허영만 화백이 진행하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시청자의 향수, 기대감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백반집이 머지않아 거의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시청자들도 아는 것일까.

좀 엉뚱한 얘기인지 몰라도, 백반집이라는 장르를 정부에서도 인정해줬으면 한다. 세금 부과도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뭔가 혜택을 줘야 하지 않나 싶다. 백반은 우리의 영혼 같은 음식이 아닌가. 지키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이다. 쓸쓸하다. 오늘 점심은 백반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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