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ESG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세계적으로 수년 전부터 점차 관련 논의가 증대된 것과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작년 말부터 관심도가 급증해 어찌 보면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고 여러모로 혼돈의 상황을 겪고 있다.

그런데 늘 강의나 세미나에 가서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결국, ESG는 공시가 강제되는 대기업 일부, 혹은 상장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ESG가 투자자 관점, 투자의사 결정에 ESG 요소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반영하자는 이야기이니 중소기업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논리적으로 도출된 듯하다.

그리고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사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몰입을 해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처럼 여유 있게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반응도 있다. 코로나로 형편이 예전 같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있을 터이니 그 부담이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올바른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상황이다. ESG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나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현 상황때문에 국내 경영 생태계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다. 그리고 갑작스레 유행하면서 역사적 맥락이 잘 정착하지 못해서 이 파도가 어디까지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소기업에도 ESG는 반드시 신경 써야 하는 파도다. 물론 평균적으로는 대기업의 그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워낙 파도가 크고 거세서 전혀 대비가 없다가는 쓸려갈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그 파도를 타면 더 멀리 빠르게 갈 기회를 얻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말하자면 ESG 흐름이 주는 위협과 기회 모두가 중소기업에 있다.

가장 먼저 눈앞에 있는 일은 대기업들이 협력사들에 ESG 관련 가이드를 따를 것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기사에 따르면 포스코와 LG가 ESG 점수가 낮은 협력사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다. 이런 가치사슬 안에서의 연쇄작용은 대기업의 문제를 중견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ESG를 당면문제로 만든다.

최근 일본에 있는 한 전문 평가기관과의 만남에서 시중 은행에서 기업에 대출할 때에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업에 우대금리 등의 혜택 적용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고, 최근에는 아예 중단하라는 압력도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탈 석탄 요구가 은행의 대출에 대한 심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 및 중소기업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요청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실재하는 ESG의 흐름은 위기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회 요인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 예를 들어서 후발업체로서 그간 대기업과의 협력이 수월치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ESG 관점의 준비가 잘 돼 있다면 가격이나 품질 등 경쟁사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서 비교가 어려운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 차원에서 차별성을 보여주고 새로운 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쉽게는 점점 더 많아질 그린본드나 ESG 연계 대출 같은 금융상품을 통해 안정적이고 유리하게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대기업만 활용하고 있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에서도 중견기업이나 일부 중소기업도 이런 금융상품을 적절하게 활용해 전체 사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하는 경우가 관찰된다. 국내에서도 분명히 관련 상품들이 곧 출시되리라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사회와 관련된 신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직접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 사전적으로 노력한다면 점점 기회가 늘어나리라 판단한다. 그리고 대기업 협력의 기회가 이 영역에서도 존재한다. 최근 글로벌에서는 ESG 이행과제를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 혹은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오픈이노베이션 관점에서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대기업의 시도는 실행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곧 실천을 시작하면 내부에는 준비되지 않은 기술이나 전문성 등을 보충하고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절한 협력자를 찾게 된다.

조금 더 본질에서 보면 ESG라는 개념어 자체가 얼마만큼 유행할지, 몇 년이나 그 단어 자체로 지금처럼 중요한 취급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환경과 사회와 의사결정의 윤리성이 기업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흐름은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제 미래에는 최소한 지금만큼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ESG 요인 중 어떤 것들이 분명히 기업의 미래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해와 이에 따른 금융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분명하게 비가역적인 흐름이다.

수익이나 위험과 관련해서 가장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주류 금융들이 ESG 요소를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중요한 변수라고 판단했다는 사실만큼은 지금의 ESG 유행과 상관없이 주의해야 하는 큰 변화라는 말이다.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PC가, 인터넷이, 모바일이 과거 기업의 경영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었던 것과 같다. 그때도 많은 기업은 ‘그것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하는 방식을 바꾸지 못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 갔다. 이 환경의 변화는 절대로 대기업이 속한 집단만 표적해 오지 않는다. 기업 경영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다.

파도를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능동적으로 준비해 그 파도 위에 올라타야 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