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선택 기로에 선 삼성전자
美·中 간 공급망 확대 점입가경
자국내 생산공장 설립 압박 지속

섣불리 한쪽 편 들다간 보복 우려
양국, 파격 세액공제 등 당근 제시

잘 활용하면 투자·생산↑ ‘겹호재’

미국 상무부 장관이 5월 넷째주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을 호출한다는 외신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상무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산업통상부 장관격이다. 글로벌 기업인들과의 간담회 주제는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난에 대한 내용이다.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에 화상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의 관계자를 호출하거나 간담회 성격의 만남을 종종 갖는다. 글로벌 기업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를 호출하는 미국정부의 회의가 지난 12일에도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19개 기업을 불러 반도체 화상 회의를 열었다.

 

조만간 상무장관 회동

미국 정부가 자꾸 해외 기업 관계자와 만나자고 하는 건 어떤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조 바이든은 한 마디로 삼성전자에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늘리라는 압박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조만간 있을 삼성전자와 미 상무장관의 만남은 가볍게만 볼 일은 아니란 뜻이다.

일개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는 최대 비즈니스 파트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들에게 보낸 초청장을 입수해 보도했는데, 거기엔 반도체 시장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모두 부른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텔, 대만의 TSMC,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이 초청됐고 또 구글과 아마존 등 테크기업도 들어가 있다. 미국 정부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삼성전자를 자꾸 만나자고 하는 걸까?

미국 정부의 최근 경제정책 화두 중에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난 해결 이슈가 있다. 상무부는 이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다. 반도체 생산 현장의 수급 안정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최근 미국 CBS 방송에서 이렇게 속내를 털어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충분한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하지 못 했으며 이는 우리가 공격적으로 다뤄야 할 중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반도체, 자동차 회사에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있으며 단기간에 공급 부족을 해결할 일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대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미국에서 더 많은 생산을 하는 게 솔루션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미국의 반도체 대응 정책 움직임의 시발점이 바로 중국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소비는 중국에 의존한다. 지난 3월 중국 반도체 수입금액이 359억 달러다. 40조원으로 이는 미국의 월간 수입금액 기준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숫자다. 1분기 반도체 수입금액도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936억 달러(105조원)에 달했다. 이대로 간다면 올해 중국 반도체 수입규모는 지난해 수입 규모(3500억 달러·392조원)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미국이 중국에 의지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있다. 20195.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화웨이를 거래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우리나라 언론지상에도 자주 언급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였다. 화웨이는 그 표본이었다. 이후 미국은 끊임없이 제재 수위를 올렸고 결국 지난해 화웨이는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로부터 스마트폰 AP를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파장은 컸다. 1위를 넘보던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순위가 4, 5위로 급락했다.

그러자 화웨이는 공격적인 반도체 재고 확보에 나섰다. 지난 4월 에릭 쉬 화웨이 회장은 현재 기업들의 재고 주기가 모두 흐트러졌다. 공황적인 재고 확보가 올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보통 화웨이처럼 반도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조기업은 재고를 쌓아두고 사업을 하지 않는다. “재고는 제로여야 한다는 게 중국기업들의 통상적인 원칙 중 하나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특정 장비나 부품의 공급과 수요의 사이클이 원활하다면, 굳이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기업이 재고를 비축하고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제재 강화로 화웨이가 반도체를 비롯해 주요 부품을 최대 6개월 이상의 재고로 비축해 뒀다는 거다. 화웨이 말고도 세계 3, 4위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 오포도 반면교사 삼아 재고 확보에 나섰다.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다. 그러니 결국 세계 반도체 시장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삼성전자한테 생산확대 압박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

중국은 이러한 일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해왔다. 2014년 발표한 반도체 산업 발전추진요강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청사진이다. 이 추진계획은 중장기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제재로 인해 예상보다 빠르게 반도체 확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중국은 속전속결의 반도체 기술 자립화에 뛰어들고 있다.

 

인텔, 파운드리에 대규모 투자예고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이 어디로 갈지는 중국을 보면 된다. 중국이 반도체 장비 수입을 얼마나 하고 있고, 또 반도체 관련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이 어느 정도인지, 중국의 반도체 소비량이 최근 얼마나 되는지만 따져 봐도 글로벌 시장의 향방이 가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美中 반도체 이슈를 떠안게 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쳤다고 판단된다. 이미 반도체 관련 주요 기업들이 중국에 터를 옮겨 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이 4390억 달러(492조원)라고 최근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 반도체 수입금액이 3500억 달러였다. 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액의 약 80%를 중국기업에게 팔았다는 소리다. 물론 전 세계 반도체의 80%가 중국에서 최종 소비된 건 아니다. 중국에 들어간 반도체 가운데 40% 가량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소비되고 나머지가 다시 전자제품으로 완성돼 세계 시장에 수출된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기조 중에 주요 사항인 대중국 수출규제 정책은 의문점이 많다. 미국이 자꾸 중국을 조이기 시작하면 중국은 자립 의지를 키우려고 시도할 것이다. 주요 소비시장에서 핵심 생산국가로 뒤바뀐다면, 중국의 반도체 기술 우위는 미국을 추월할 게 뻔하다.

美中의 반도체 패권 타이틀전이 앞으로 삼성전자에겐 기회가 될까, 위기가 될까?

우선 미국의 인텔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려고 한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을 말한다.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11체제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인텔이 뛰어들면 ‘12체제가 된다.

특히 미국은 자기네 팹리스 기업들에게 인텔에다가 반도체 생산을 몰아주도록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팹리스는 시스템반도체의 설계와 개발만을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국가가 나서서 반도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행태다. 말처럼 이뤄지면 순식간에 삼성전자가 인텔에 밀리는 건 시간의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을 위해 이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삼성전자는 고민이 많아지게 된다.

 

미국편에 선 대만 TSMC

이걸로 끝이 아니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세계 1위는 삼성전자다. 주로 PC와 모바일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낸드플래시다. 그런데 이 시장에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연합을 추진 중이다. 또 그 연합체가 일본의 키옥시아(옛 도시바반도체)를 인수하는 데까지 이른다면 삼성전자가 선두의 자리에 있기는 어렵다.

정말 위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아직 모른다이다. 우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20204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전 세계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4%1위다. 키옥시아는 17.2%, 웨스턴디지털이 15.5%. 한국의 SK하이닉스가 11.7%, 마이크론이 11.5%, 인텔은 11.5%. 시장 지위는 삼성전자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최근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부문을 인수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협력해 일본의 키옥시아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위를 잡기 보다는 자신들과 어깨를 나누던 SK하이닉스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란 거다. 만일 위에 언급한 대로 이뤄지면 기존 ‘15체제가 ‘3구도가 된다.

하지만 3강 구도는 어렵다.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이 협력해 키옥시아를 인수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반도체 자국 우선주의는 미국과 중국 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이나 대만도 각자 자신들의 산업 경쟁력 확보에 혈안이다. 일본에겐 유일하게 남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키옥시아다. 키옥시아 경영진이 팔고 싶어도 일본 정부가 이에 제동을 걸 확률이 높다.

다시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은 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두 고객인 미국과 중국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파운드리의 생명은 위탁생산을 얼마나 유치하느냐는 수주경쟁이다.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는 미국편에 섰다.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이 끝난 지 3일 만인 지난 415일 중국의 팹리스기업 페이텅의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누구 편에 선다고 할까? 삼성전자는 TSMC와 달리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삼성전자의 2020년 전체 매출 가운데 26%가 중국에서 나왔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시안에 대규모 메모리공장을 두고 있다. TSMC처럼 섣불리 미국의 편을 들었다가 중국한테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중국이 자신들의 공급망에 삼성전자를 뺄 수 없다는 거다. 파운드리 기술 우위에 있어 삼성전자와 TSMC는 독보적이다. 중국기업이 삼성전자를 따라 잡을 수 없는 초격차를 유지 중이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네 땅 안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때 삼성전자가 이를 이용해 투자를 받고 생산량을 늘리는 호재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비용의 40%를 세액공제하겠다는 파격제안 중이다. 중국은 10년 동안 법인소득세를 면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자신들의 실리를 찾기 위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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