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투자 가치나 안정성을 판단할 때, 흔히 주가나 분기 보고서처럼 수치화된 자료들을 참고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과연 숫자가 기업의 모든 것을 말해줄까?

성공적인 조직과 브랜드는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런 기업은 생각 외로 드물다. 대부분의 기업이 고객이 아니라 금융 시장과 주주에게만 신경을 쓴다. 기업의 직원들은 내부적인 사안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들의 행동이 외부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브랜딩·마케팅 전문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마틴 린드스트롬은 기업 컨설팅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조직 내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있냐고 물었을 때,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대답하며 기업 주가나 분기 보고서를 그 근거로 드는 일들을 흔히 겪어왔으며, 저서인 고장 난 회사들을 통해 조직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성과 비현실적 문제, 만연한 부조리를 파헤치며 기업들의 다양한 고장 난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고장 난 조직이 소비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예를 고장난 TV 리모컨일화를 통해 전달한다.

 

온오프 버튼이 2개씩 달린 괴물, 리모컨

출장지 호텔에서 뉴스를 보려고 TV 리모컨을 집어 든 그는 이내 당황했다. 무수히 많은 버튼에 숫자 키패드는 세 부분으로 나눠 있었고, ON, OFF 버튼이 각각 두 개씩 있었다. 이것저것 누르다가 힘겹게 TV를 켠 린드스트롬은 뉴스를 본 후 다시 TV를 끄려고 했지만, 첫 번째 OFF 버튼을 누르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두 번째 OFF 버튼은 에어컨 전원을 꺼버렸다. 결국 플러그를 뽑아 TV를 껐지만, 이번에는 냉장고와 램프까지 동시에 꺼졌다.

몇 달 후 비행기에서 우연히 그 리모컨 회사의 엔지니어를 만난 린드스트롬은 리모컨 탄생의 비화를 듣게 됐다. 여러 사업부가 리모컨의 형태를 놓고 경쟁을 벌였고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 각각의 사업부를 기준으로 리모컨 따먹기를 한 것이었다.

린드스트롬은 이 복잡한 리모컨이 열악한 내부 의사소통과 조직 간 권력 다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단언한다. 교각의 미세한 균열이 심각한 문제의 조짐인 것처럼, 상식과 거리가 먼 리모컨은 그것을 생산한 기업 내부의 핵심 문제를 드러냈다. 각각의 부서가 리모컨 영토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동안 어느 누구도 소비자의 눈으로 리모컨을 바라보지 못했다. 린드스트롬은 이 사례에서 무엇보다 큰 문제는 소비자가 리모컨 사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소비자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부조리와 불편함 속에는 고장 난 기업 생태계, 즉 갖가지 이유로 중요한 상식적인 원칙을 잃어버린 비즈니스 생태계가 숨어 있다. 어떤 기업의 제품이 소비자 친화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 기업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준다.

출간과 동시에 현지에서 수많은 경영 사상가들의 찬사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기업 필독서로 떠오른 이 책은 성과와 규칙, 신기술의 함정에 빠진 기업들이 진정 최우선에 둬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주가나 분기 보고서로는 알아챌 수 없는, 조직을 망가뜨리는 작지만 중요한 신호들을 확인할 수 있다.

린드스트롬은 그럴듯한 수치에 가려진 이면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업을 고장나게 만드는 요인을 크게 6가지로 정리한다. 부정적인 고객경험 사내 정치 기술 회의 넘쳐나는 규칙과 정책 규칙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고장 난 회사들에는 이 6가지 요인으로 인해 비상식적인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기업들의 사례가 담겨 있다. 독자들은 좋은 기업과 문제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는 동시에 혹시 우리 회사도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바뀐 업무 방식으로 혼란에 빠진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새로운 업무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은 기존의 부조리와 비효율을 없애고, 상식을 회복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비상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조직들을 구해줄 흥미롭고 유용한 방법들로 가득한 고장 난 회사들은 모든 기업의 필독서인 동시에, 자칫 놓치기 쉬운 문제적 기업의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 고장 난 회사들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 어크로스 출판)
- 한국출판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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