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전열 가다듬는 LG·SK·삼성
中, 무차별 스카우트로 1위 등극
유럽·일본 등도 가파른 성장세

LG·SK 극적합의 후 상생 행보
성과제 도입 등 인재잡기 안간힘

유출 지속 땐 기업 생존 갈림길
국가차원 지원방안 서둘러야

5월초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지난 2년 가까이 소송전을 진행해 왔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극적 합의를 했다. 이로써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미래 지형도가 어떻게 재편되고 펼쳐질지에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됐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2019년부터 배터리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 소송 난타전을 벌여왔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침해 혐의로 제소하면서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소송전은 기업 입장에서 미래 불확실성 중에 가장 큰 딜레마다. 배터리 시장이 급격히 발전하던 지난 2년 동안 두 회사는 사업에만 집중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송사도 챙겨야 했다.

하지만 이제 두 회사가 상생의 길을 걷게 됐다. 공동합의문에서 두 회사는 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 발표와 함께 향후 투자 확대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기대도 커진다. 여기에 삼성SDI를 포함하면 한국 배터리 3대 회사들이 사업의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기업, 세자릿수 성장 질주

그래도 소송전의 여파는 크다. 올해 1~2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19.2%을 차지했다. 삼성SDI5.3%, SK이노베이션 5.0%을 기록했다. 3대 배터리 기업의 총합은 정확히 29.5%. 1년전인 지난해 1~23대 기업은 41.2%를 점유했다. 1년 사이 11.7%p나 줄었다.

반면 중국, 일본, 유럽 등의 배터리 기업들은 빠른 변화와 도전으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중국의 CATL, BYD, CALB, 궈시안 등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시장의 회복세를 등에 업고 급성장했다. 대부분 세 자릿수 이상 매출이 올랐다.

현재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1위는 중국의 CATL. 작년 보다 무려 272% 성장하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 31.7%를 달성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소송전에 신경 쓰는 사이에 CATL가 선두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중국의 다른 기업들도 배터리 시장의 선두권에 속속 진입 중이다. 중국 BYD도 전년보다 401% 성장했다. 현재 7.0%의 점유율로 4위에 올랐다. 배터리 시장의 주된 소비주체인 자동차 회사들도 중국 쪽으로 돌아섰다. 특히 LGSK로부터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공급받던 폭스바겐이 3월부터 중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분명 지난 2년의 소송전은 한국 배터리 산업에 있어 ‘2보 후퇴의 뼈아픈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덕을 중국이 톡톡히 가져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는 게 국내 업계의 공통된 분위기다. 3대 기업들의 사업 재정비를 통한 ‘K-배터리의 위력을 다시 한번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다시 재정비에 돌입한 우리 기업들에게 또 다른 이슈가 터지고 있다. 바로 배터리 전문인력 유출문제다. 지난 2년 한국기업들이 뺏긴 것은 시장 점유율만이 아니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자신들의 자본력을 쏟아 부어서 한국의 유능한 전문인력을 빼갔다. 이러한 인력유출이 어느 정도까지 번졌나면,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이 배터리 R&D를 시작하면서 설립한 회사의 임원진이 거의 모두 우리 한국 연구원들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완성차 업계도 전문인력 대거 채용

확실히 전문인력의 부재는 전 세계 배터리 산업을 뒤흔들 메가 이슈가 된다. 배터리 기업만 전문인력을 공격적으로 스카웃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완성차 기업도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전문인력을 대거 채용 중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시장 점유율 보다, 앞으로 5, 10년 뒤 시장 선점을 내다보면서 완성차 기업도 인력 충원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3대 배터리 기업의 위상은 사실 10년 넘는 경력의 중견급 배터리 기술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배터리 산업 자체의 역사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초창기 산업에서는 전문인력을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냐가 시장 경쟁력의 전부라고 진단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고급 기술력을 갖춘 한국 3대 기업의 인재들을 스카웃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나라의 경쟁기업에겐 가장 탁월한 전략이 아닐 수가 없다.

이는 비단 배터리 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한국이 선도하는 산업인 반도체, LCD, 올레드 등에서 국내 기업의 인력을 고임금과 파격적인 복지로 해외로 유출하는 사례가 그간 있어왔다. 그렇지만, 배터리 산업에서의 인력 유출은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배터리 산업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앞으로 한국경제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할 메가 인더스트리가 될 게 뻔하기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나름의 인력 지키기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이다. 핵심 연구진에게 해외 경쟁기업 보다 많은 돈을 지급하는 부분도 계속 검토 중이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 자체가 최근에 들어서야 간신히 흑자를 내고 있다. 이 문제도 쉽게 결정짓기 어렵다. 그나마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전체 직원의 임금을 평균 10% 인상했다.

삼성SDI도 올해 모든 직원의 임금을 평균 7% 인상에 합의했다. 그래서 다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게 성과제도다. 성과가 나면 제대로 보상하겠다는 체계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폭스바겐 배터리셀 자체조달

전 세계 배터리 산업에서는 폭스바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 이 회사는 지난 3배터리 셀을 자체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스웨덴의 배터리기업 노스볼트와 손잡고 유럽 6개 지역에 각 40GWh 규모의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은 세계 1위 완성차 기업이다. 이 회사가 외부에 배터리를 의존하지 않겠다는 건 배터리 업계는 물론 완성차 업계에 큰 임팩트를 준다.

여기서 폭스바겐과 손을 잡은 스웨덴의 노스볼트라는 배터리 업체를 살펴보면, 인력유출이 어떤 나비효과를 내고 있는지가 보인다. 2016년에 설립된 노스볼트는 신생 기업이다. 그런데 기술 수준이 한국의 배터리 3사 수준까지 오지 않았을까하는 평가를 한다. 그 이유는 노스볼트의 인력구성 때문이다.

노스볼트의 핵심 기술진은 한국 배터리 3사에서 오래 근무한 전문가들이 많다. 2017년 본격적으로 연구팀을 구성할 때 한국과 일본에서 기술진 30여명을 영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LG화학 출신도 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노스볼트에 한국인 기술진이 LG 뿐만 아니라 삼성, SK도 많다는 이야기가 많다. 10년 이상의 경력의 고급 기술진을 포함한 얘기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2년에 걸친 소송전을 하게 된 본질이 있다. 바로 인력 다툼이슈에서 비롯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서 일했던 직원 수십 명을 스카우트했다. 이때 바로 이직한 기술진이 영업비밀을 가지고 갔고 이걸로 사업에 있어 불이익을 끼쳤다는 게 소송전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중국의 노골적인 한국 배터리 기술진 영입 작업은 향후 시장 판도의 결정적인 발단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헝다그룹이 한국 인력을 모셔갈 때는 그 조건이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연봉의 3~4배를 지급한다. 헝다그룹에 새롭게 조인한 핵심 간부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현대모비스, SK이노베이션, 삼성SDI, LG화학 등에서 다들 임원급으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고급인력들이 회사를 이직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개인의 판단 몫이다. 이를 막으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게 자본시장의 기본일 것이다. 중국기업으로 이직하는 한국 기술진을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력유출은 기업의 지속 성장을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중국은 기업의 자본력과 국가의 각종 지원으로 잠재 성장 산업을 합심해서 키워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도 인력유출이 기업만의 이슈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들여다 봐야 할 문제가 됐다. 과거 LCD산업에서도 중국기업은 노골적으로 한국 인력을 빼갔고, 정부는 육성정책을 펼쳤다. 결국 한국의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선도하던 시장이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하나둘 시장 철수를 하게 됐다. 따라서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 산업인 배터리 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전처를 다시 밟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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