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은 옛 현대상선의 새로운 이름이다. 지난 20203월 열린 44차 정기주주총회 때 바꾼 사명이다. 간판을 잘 바꾼 덕분인지 HMM은 지난해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면서 국내 대표 해운사로 힘찬 항해를 하고 있다.

HMM은 국적해운사다. 국적항공기와 같은 의미로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사 역할을 한다. HMM의 대표는 배재훈 사장으로 20193월 수장이 됐다. 그는 취임 이후 1년만에 흑자경영으로 뒤바꾼 후 줄곧 흑자 항해 중이다. 무엇보다 올해 HMM을 눈부시다. 창사한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예정치)할 정도로 막강한 글로벌 해운사가 됐다.

최근 증권사가 추정하는 HMM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약 9342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HMM의 연간 영업이익 9808억원과 맞먹는 수치다. HMM의 지난 기업사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반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HMM20분기 넘게 적자행진을 달려왔던 과거의 그림자가 말끔히 씻겨 나가고 있다.

HMM의 호실적은 시대적 운이 따른 부분도 있다. 현재 해상운임 지수는 폭증하는 중이다. 운임지수 중 대표적인 상하이컨테이너선지수(SCFI)는 최근 2980선까지 도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2790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운임지수가 높다는 것은 해운사가 같은 운항을 해도 수익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 해운시장은 운임 장기화로 들어갔다. 그래서 HMM의 연간 영업이익도 올해 3조원까지 예상하고 있다.

운임지수 덕을 본 것도 있지만, HMM의 호실적에는 배재훈 사장의 탈월한 경영적 판단도 주효했다. 지난해 4월이었다. 배 대표는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정회원으로 HMM을 가입시켰다. 해운동맹에 가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일정 수준의 운임을 유지하기 위해 해운업자들이 가격 동맹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공급자 카르텔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해운사가 거점 항로를 모두 운항하는 것은 어렵끼 때문에 해운동맹 멤버끼리 노선과 선박을 공유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해운사는 해운동맹에 속하지 않으면 유럽과 미주 노선을 운항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해운동맹의 이점을 HMM이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배 사장은 취임 이후 지속적인 노선 효율화 작업에 나서 지난해 인도받은 2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유럽, 미주항로에 투입했다. 1TEU는 우리가 가끔 도로에서 보는 컨테이너 박스 크기다. 오는 6월까지 HMM16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 인도도 마무리하게 된다. 물동량 면에서 경쟁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배재훈 사장이 HMM을 맡기 전까지 해운사업은 깊은 침체기였다. 2016년은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해운업의 미래 전망은 부정 투성이었다. 그러나 몇 년전부터 HMM의 실적개선이 이뤄지면서 전반적인 시장의 기대치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가장 어둡고 어려운 시기에 HMM의 뱃머리를 잡고 있는 배재훈 사장이 만들어낸 변화다.

그렇다고 배재훈 사장이 해운업계에 오래 종사한 배테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경험이 일체 없던 CEO였다. 고려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LG반도체 미주지역 법인장,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마트폰 부문) 해외마케팅 담당 부사장, 판토스(옛 범한판토스)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나마 그가 2009년부터 물류회사인 판토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맡은 게 해운과 연관성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배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사장실 직속 라인의 비상상황실을 만들었고, 체질개선에 나섰다. 그가 매일 출근해서 한 일이 있다. 국제유가 등락과 항로별 문제 상황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HMM의 전 세계에 운항 노선 상황을 실시간으로 챙겼다. 서울 종로구 본사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전 세계 바다를 들여다 보고 있던 것이다.

1분기 사상최대 호실적으로 HMM이 자축의 분위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선복량 기준 세계 1, 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가 뭉치고 있다. HMM은 이들과 한바탕 바닷길 전쟁을 펼쳐야 한다. 머스크와 MSC는 각각 알파벳 첫 자를 따서 ‘2M’이라는 이름의 해운동맹을 맺었다.

2M은 세계 해운업계에서 악명이 높다. 2016년 한진해운의 파산의 직간접적인 영향에도 2M이 있다. 수많은 해운기업들이 연쇄 몰락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바로 2M이 주도한 저운임 정책을 꼽는다. 2M이 의도했던 치킨게임이었다.

두 선두기업이 낮은 운임을 유지하면서 다른 해운사들을 말려 죽이는 정책이었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해운사를 2M 재빨리 인수해버렸다. HMM이 지난해 2분기까지 무려 20분기 연속적자를 낸 가장 큰 원인도 2M의 저운임 정책 때문이었다.

실상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항공업과 마찬가지로 해운업계도 악재가 심화됐다. 지난해만 전 세계 물동량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운임료가 5%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시장은 금방 정상화 궤도에 올라섰다. HMM이 약진을 한 배경에도 초대형 컨테이너선박을 확보한 것도 있지만, 바로 2M이 코로나19 속에서 저운임 정책을 중단한 게 덕을 봤다. 시장의 가격을 틀어쥐고 있던 선두기업이 잠시 쉬고 있는 상황에서 HMM이 재빠르게 성장엔진을 불태운 것이다.

그래서 해운업계에서는 HMM의 최대 위기는 다시 2M의 저운임 가격 정책이 가동될 때라고 예견한다. 때문에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는 2M의 카르텔이 재가동되기 전에 HMM이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이를 위해 HMM은 적어도 100TEU의 물량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100TEU를 배에 싣는다는 건 세계 해운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다. 100TEU라면 2M의 저운임 가격정책 방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규모가 크면 운송단가를 자체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기준 HMM의 선복량(배에 싣는 량)은 약 71TEU. 배재훈 사장은 이를 내년까지 100TEU로 올릴 계획이다.

전 세계 해운업계에는 3개의 큰 얼라이언스가 있다. 마치 삼국지와 비슷한 형국이다. 먼저 2M이 있고 이어 3, 4, 7위 업체가 뭉친 오션이 뒤를 따른다. 마지막이 5, 6, 9위 업체가 모인 디 얼라이언스. HMM은 이 동맹 중에 최약체인 디 얼라이언스에 속한다. 사실 HMM이 원한다면, 2M과 오션에도 동맹 해운사로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HMM3위 동맹에 가입했다.

이유가 있다. HMM이 배를 띄우는 노선은 동아시아~미국 노선과 동아시아~유럽 노선(이하 유럽 노선)이다. 20213월 기준으로 디 얼라이언스의 동아시아~미국 노선 점유율은 27%로 오션 얼라이언스에 이어 2위다. 이 노선에서는 디 얼라이언스가 해볼만한 노선싸움이 가능하다.

HMM은 바로 이 노선을 오랫동안 주력으로 해왔다. 다시 말해 HMM이 디 얼라이언스 동맹으로 오션을 밀어내고 1위 그룹으로 올라설 수 있는 노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HMM이 디 얼라이언스 가입 이후 해당 노선의 점유율은 24%에서 27%로 상승했다.

이 노선에선 HMM에게 기회가 분명히 온다. 경쟁그룹인 오션 동맹의 핵심 맴버인 코스코는 세계 3위 해운사인데 이 노선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체 점유율만 16%. 오션 동맹이 이 노선에서 1위를 하는 이유도 코스코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중 무역분쟁으로 코스코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공존하고 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해운물량을 대부분 코스코가 맡고 있는데, 무역분쟁이 심화되면, 이를 대신할 대체 해운사가 필요하다. HMM은 바로 그 빈 자리를 노리고 있다.

유럽 노선은 2M과 오션의 독무대다. 3월 기준 오션얼라이언스가 38%, 2M37%, 디 얼라이언스가 25%를 점유하고 있다. 디 얼라이언스는 이곳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유럽 노선 경쟁은 사실 초대형 선박의 각축장이라고 한다. 그건 HMM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초대형 선박인 24TEU급을 무려 12척을 보유한 곳이 바로 HMM이다. 보유량으로 전 세계 1위다. 이 때문에 디 얼라이언스는 HMM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크다. 이 때문에 HMM은 전 세계 해운동맹 3위 그룹인 디 얼라이언스의 맨 앞에 서게 됐다. 동맹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건 HMM 입장에선 자신들만의 전략으로 전 세계 바닷길을 호령할 기회가 왔다는 말과 같다. HMM이 흑자경영을 넘어 세계경영의 본격 출항을 알리고 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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