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왕 신춘호 농심회장 별세]
라멘, 그 이상의 라면 독자개발 성공
‘사나이 울리는’신라면 초대박 행진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도 화제
코로나19에도 ‘집밥특수’반사이익

신동원 부회장, 2세 경영 본격 등판
​​​​​​​콜라겐 보충 ‘건강기능식품’정조준

라면왕. 농심 창업주, 율촌 신춘호 회장이 327일 지병으로 영면에 들었다. 향년 92.

() 신춘호 회장은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형제 중에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있다. 신춘호 회장은 1958년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첫째 형 신격호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에 몸담았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에서 롯데를 이끌었다.

신춘호 회장은 일찌감치 라면에 주목했다. 당시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신춘호 회장은 1965년 라면업체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롯데 라면을 출시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신춘호 회장은 라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일본에선 라면이 간편식이지만, 한국에선 주식이어야 한다.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춘호 회장은 말해왔다.

 

라면사업 이견으로 롯데와 결별

하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반대했다. 시기상조라며 라면 출시를 강력히 말렸고, 결국 롯데 사명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에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롯데와 결별했다. 이 일로 형제 관계는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신춘호 회장은 지난해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에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

신춘호 회장은 분명한 경영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일본 라면을 그대로 도입하지 않았고, 한국식 제품 개발에 힘썼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장인정신을 강조했다. 회사 설립 초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고 제품을 개발한 건 당시 분위기에선 파격이었다.

공장을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선진국 제조 설비를 들여오더라도 턴키 방식의 일괄 도입에는 제동을 걸었다.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비를 현지화시켰다.

신춘호 회장은 마케팅 감각과 기획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회장은 국민적 사랑을 받는 제품을 다수 개발했다. 새우깡(1971),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등은 여전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명성이 높다.

제품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명쾌하게 제품 이름을 지었다. 이는 농심(農心)이라는 사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제품 중에는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안성지역명에 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에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신라면 역시 신 회장의 작품이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돼있었고, 한자를 쓰는 전례도 없었다. 신 회장은 신 라면이 부르기 편하고 제품 특징을 명확히 드러낸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이 일화는 농심에서 유명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사나이 울리는신라면은 전 세계 100여개 국에 수출되며 명실공히 농심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신라면은 지난해 해외에서만 39000만 달러(4500억원) 매출고를 기록했다. 농심 해외 매출의 40%가 신라면 한 제품으로 나온다.

실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 대부분 라면보다 3~4배 가량 비싸다. 월마트를 비롯해 주요 유통채널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신라면은 중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8년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한편 작년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화제가 되며, 국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재조명 받기도 했다.

 

국내 라면·스낵1철옹성

농심은 1985년 국내 라면·스낵 업계 1위로 올라섰고 그 후로 한 번도 왕좌를 내주지 않았다. 라면 수출액은 20041억 달러를 넘었고, 20155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엔 코로나19사태로 집밥 특수를 누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농심의 매출액은 26398억원, 영업이익은 1603억원으로 전년대비 각 12.6% 103.4% 늘었다.

신춘호 회장은 최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최근까지도 회사의 주요 현안을 직접 챙겨온 것으로 알려진다. 92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1965년 농심 창업 이래 56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했고, 이후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며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농심은 이제 신춘호 회장의 장남 신동원 부회장이 이끈다. 신동원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 농심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신동원 부회장은 일찍부터 후계자로 낙점됐다. 신동원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000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할 여지는 많지 않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최대주주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지난해 말 기준 신동원 부회장의 농심홀딩스 지분은 42.92%. 신춘호 회장에게 두 딸과 두 아들이 더 있다. 장녀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그리고 차녀 신윤경 씨(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부인)가 있다.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은 농심홀딩스 지분 13.18%를 보유하고 있다. 신동원 부회장과 차이가 크다.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농심홀딩스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신춘호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은 아직 상속을 남겨두고 있다. 신춘호 회장은 농심과 율촌화학의 주식을 각각 35만주(5.75%), 3347890(13.5%) 갖고 있다. 농심 측은 현재 지분상속과 관련해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신동원 부회장은 20년 넘게 농심을 경영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그늘 아래 였다. 주요 사안을 결정할 땐 창업주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은 지금부터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신동원 부회장은 해외시장에선 라면 등 주요 상품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국내 시장에선 다양한 신사업을 육성해 농심을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간편식 브랜드 도 강화

현재 농심은 2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제2공장을 짓고 있다. 1공장은 90% 이상 가동되고 있어 생산설비 확충이 빠르게 요구된다. 2공장은 올해 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미주 지역에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남미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신사업으로는 가정간편식과 건강기능식품 등이 손꼽힌다. 신 부회장은 지난달 농심 주주총회에서 신사업은 건강기능식품이 유력하다콜라겐 제품은 성공적으로 출시했고, 지난해 선보인 대체육은 올해 제대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심은 지난해 라이필브랜드를 론칭하고, 콜라겐을 보충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라이필 더마 콜라겐을 시장에 선보였다. 또 식물성 대체육을 간편식품에 접목시킨 베지가든브랜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간편식 브랜드 쿡탐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식품업계 창업주 1세대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2세대들이 키워나갈 K푸드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된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