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실수=범법자’는 과도 입법
법안 시행 전 대폭개정 불가피
규제완급 조절해야 中企 감당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중소기업은 선출된 권력이 만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 아직

도 아물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 여파, 커지는 주52시간 근무제 후유증, 뿌리 경제 고사시키는 경영제도 3법에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세해 비틀어진 팔목에 가슴을 옥죄는 이중고통과 아픔을 중소기업의 퍅퍅한 삶에 안겨줬다.

국회가 생사를 가르는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돕지는 못할망정 법을 앞세워 천 길 낭떠러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벼랑길로 몰고 있다. 중소기업은 상심을 넘어 원성과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억누르면서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기업하기 힘든 나라도 없다는 자조 섞인 말들은 뭉텅이 규제에 때만 되면 선으로 포장된 법률들이 병목을 만들기 때문에 회자되는 말인 듯 싶다. 그동안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관련 단체가 나서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내고 입법 중단을 호소해왔으나 엄벌에 처하겠다는 무모한 의지 앞에서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은 헐크(hulk)가 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대기업 하청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산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을 외주화하면서 방치하다시피 한 산업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고 무책임을 없애 목숨을 잃는 노동자의 비극을 되풀이 않으려는 취지다. 이 법은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 상한이 아닌 하한(1년 이상)의 큰 위험을 안겨 산업재해를 예방하자는 본질이 깔려있다. 외주화된 위험을 원청기업에 책임지게 하면 위험을 없애기 위해 안전 강화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좀처럼 당하기 어려운 안전사고가 한 번 발생해 사업이 망할 정도로 큰 위험이 닥친다면 중소기업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까. 사업을 접거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산업현장 교육, 설비투자 등 안전조치를 다하더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범법자가 된다면 과도한 입법이다.

산업재해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관리 책임도 있지만 근로자의 과실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중소기업은 한 사업장에서 소유자, 운영자, 관리자가 별도로 있는 경우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애매하다. 입증책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 준법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등과 같은 추상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용어를 명료하게 사용하고 명시해 중소기업이 준수할 수 있는 법률로 정비해야 한다.

준수할 수 없는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위배된다. 중소기업이 준수할 의무가 너무 포괄적이면 판단이 재량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예방조치가 가능한지를 추정해 산재예방인프라를 확충 및 보완해야 한다. 혁신할 산재예방행정시스템도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 수렴하고 정비해야 한다.

산업현장 안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나 꼭 해결할 과제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재벌개혁이나 반기업 정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상 우리나라의 사업주 책임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고려할 때 현재 부과한 의무규정이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지 면밀히 조사 및 점검함이 우선이다. 중대재해가 왜 많이 발생하는지, 어떻게 해야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규제의 완급 및 폐지를 정책의 질적 고도화에서 이뤄야 한다.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폭 개정해야 한다. 입법이 시행되기 전에 국회와 정부가 그렇게 하리라 믿는다.

 

-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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