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석탄광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태백시. ‘관광 태백’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더니 언제부터인지 우중충한 기운은 사라지고 안정권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 가장 높은 고산인 해발 6백m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길고 춥다. 그래서 눈이 많아 설경, 설화 감상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태백산(1,567m)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정상 부근의 주목단지와 천제단 평원에 눈이 쌓이는 겨울이기 때문이다.

어디 겨울 뿐이겠는가? 봄이면 철쭉이, 여름의 검룡소는 물속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얼음물이 쏟아져 내린다. 가을 삼수령 고랭지 채소밭 또한 일대 장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워낙 고원지대라서 모든 게 너무 늦거나 빠르다. 다른 곳이 이미 여름을 향해 달려갈 즈음에서야 철쭉꽃이 만발하고 가을 단풍 또한 다른 지역이 절정을 달할 즈음에 잎새를 떨구어 버린다. 기온 낮은 태백시는 그래서 겨울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이 많이 내려주는 그해, 태백산의 설경을 감상하려는 인파로 열기가 넘쳐난다.
한해 전 겨울 태백산 천제단을 찾았다. 눈이 귀한 해라서 흔하게 발에 치일만큼 많던 눈도 보기 힘든 때였다. 눈이 없어서 어렵지 않게 민족의 영산이라 일컫는 태백산 정상부위의 천제단을 오를 수 있었다. 그해 3번이나 태백을 더 찾은 후 2005년 1월, 영동지역의 때 아닌 폭설이 내리면서 이곳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해마다 1월말이면 축제를 여는 이곳에서는 ‘단 눈’이 된 것이다. 워낙 내륙 깊숙한 곳에 분지처럼 들어 앉아 찾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삼척을 통해 들어오면 도계를 넘어 드는 고갯길의 운전이 어려울 것이고 정선의 만항재 또한 쉽지 않을 터. 가장 편할 수 있는 제천-석항-상동을 거쳐 태백산을 찾는 방법을 선택했다.
태백산 오르는 방법은 크게 네 군데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당골 매표소와 백단사, 유일사, 사길령 등 네 길이 있다. 최단 코스는 백단사나 유일사 코스.
지난해는 경사도가 높지만 최단코스라는 백단사 코스를 선택했었다. 길은 적당히 넓고 하늘을 향해 한없이 뻗어 있는 낙엽송이 꽤 운치 있었다. 가느다란 잎을 무성히 떨어뜨린 숲길과 흙길이 어우러진 등산로는 걷기는 무척 편안했고 망경사 절집까지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올랐다.
하지만 이번 겨울 산행은 쉽지 않다. 길이 나쁜 것은 아니다. 눈길은 이미 사람들이 남겨놓은 무수한 발자국으로 검은 흙이 드러날 정도였지만 원하던 그림이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에 걸쳐 있어야 눈꽃도 없고 바닥에 깔린 눈도 제 색을 잃어 버렸다. 날씨 또한 흐릿하고 늦게 출발해서 정상까지 갈 시간도 어려울 것 같다. 사진 속에 흔하게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을 파인더에 담기는 애당초 틀린 일이다. 여차하면 망경사 절집에 하룻밤을 유하고 일출을 볼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정상을 목전에 두고 하산을 결정한다.
여튼 태백산 정상부에 오르면 망경사와 천제단이 있다. 태백산 9부 능선인 1500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망경사는 월정사의 말사다. 652년(신라 진덕여왕 6) 자장이 창건하였다. 자장은 태백산 정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이곳에 문수보살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암자를 지어 그 석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나중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일자로 길게 이어져 있다. 맨 끝에는 ‘용정’이 있다. 물을 통해 바다 용왕과 교통한다는 우물이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 이 약수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절집에서 계단을 따라 천제단으로 가는 길목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다시 계단이 이어지고 허허벌판에 천제단(중요민속자료 제228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원형제단. 태백산은 신라 때에 오악 가운데 북악으로 정하여 왕이 친히 중사의 제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는 천제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으며 구한말에는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다. 특히 한말 병장 신돌석 장군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고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런 제단이다. 천제단 주변에는 죽어 천년, 살아 천년이라는 주목나무들 군락지가 있다. 주목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나 설경은 흔히 볼 수 있는 태백산 사진이다. 사진 속에나 보았던 태백산 설화를 올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나에게는 또 하나, 가야만 하는 볼거리를 남겨 둔 것이라고 위안 삼는다.
다음날 일찍이 당골 눈꽃축제장으로 향한다. 눈 축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음 조각, 비닐포대 썰매장, 눈썰매장, 개썰매타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다. 추위도 느낄 수 없을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있어서 겨울 태백은 들러볼만 한 것이다.

■대중교통 : 청량리 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도 좋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당골입구행 시내버스가 자주 운행됨.
■자가운전 : 태백을 목적으로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동해나 삼척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정선이나 영월-상동을 통해 들어올 수도 있다. 정선방면에서는 고한에서는 414번 지방도 이용해정암사 들러 만항재를 넘어서면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와 만난다.
■별미집과 숙박 : 태백에 머무를 경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우고기다. 그중에서 태성실비식당(033-552-5287)은 연탄불을 이용해 고기를 구워 먹는 곳. 이 집이 있어서 태백 여행이 더 즐거워 질 정도. 좁은 공간이라서 늘 기다려야 하는 곳. 알려주고 싶지 않은 수준급 맛집이다. 도립공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도계의 뚱보냉면(033-541-2347)도 오며가며 들러볼만 하다. 숙박은 태백산 도립공원에는 민박촌(033-553-7460)이나 그린힐 모텔(033-554-0772) 등 다수 있다. 또 태백관광호텔(033-552-8181) 등이 있다. 태백산 입구의 훼미리 보석사우나(033-554-3311)는 24시간 운영한다.
■여행포인트 : 또 이곳에는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시발점인 황지연못과 구문소가 있으며 용연동굴, 추전역이 있다. 가을철이면 삼수령의 고랭지 채소밭 구경도 괜찮다. 또 태백에서 삼척 바닷가가 멀지 않다. 가는 길인 통리에 있는 미인폭포도 잠시 들러보길. 또 도계를 지나서 대이리 환선굴을 탐방할 수 있다. 도계는 ‘꽃피는 봄이 오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 ‘당골’ 눈꽃 축제장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