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여의도에 문 연 ‘더현대 서울’
국내 최초 자연친화형 백화점 선언
영업매장 면적은 전체의 절반 수준

쇼핑공간 넘어 휴식공간 자리매김
거리두기 반영해 동선 너비 8m로

고객편의 위해 식품관은 더욱 확대
명품 브랜드 입점 성사 여부 주목

유통가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코로나19는 비대면 사회를 앞당겼고 온라인 상거래, 비대면 쇼핑은 뉴노멀이 됐다. 온라인 쇼핑몰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은 쿠팡을 보자.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쿠팡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올해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쿠팡은 최근 미국 증시 상장을 공식화했는데, 기업가치는 55조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6~7배 비싼 가격이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라이브 커머스는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폭풍 성장 중이다.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비롯해 카카오 쇼핑라이브, 쿠팡라이브 등 수많은 라이브 커머스가 온라인 유통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라이브 커머스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뉴노멀시대, 유통시장 지각변동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2010년 쇼핑 기능을 덧붙이며 e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쇼핑 기능이 도입되기 전부터 이미 SNS는 직간접적으로 홍보와 판매 채널로 활용되고 있었다. 인플루언서의 사진 한 장, 추천 한 마디가 팔로어의 구매로 이어지며, 공동구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가에 무게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양지는 아니다. 한쪽에서 해가 뜨면, 다른 쪽에선 해가 지는 법.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혹독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 롯데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지난해 롯데마트가 10여개 점포를 정리했고 백화점, 슈퍼, 롭스 등도 100여개 점포를 폐점했다. 롯데마트의 최근 3년 누적 영업 적자는 660억원에 이른다. 같은 적자지만, 쿠팡과 롯데마트의 적자는 결이 다르다.

최근엔 인력 감원에도 들어갔다. 롯데 그룹은 지난해 그룹 차원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을 의욕적으로 출범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결국 롯데온 수장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최근 물러났다.

오프라인이라고 모두 한겨울은 아니다. 유통업계 양대산맥 중 하나인 신세계 그룹. 이마트는 롯데마트와 정반대되는 전략을 구사하며 봄을 앞당기고 있다. 허리띠를 조이고 매장을 축소하는 대신 돈다발을 풀고 매장을 리뉴얼하며 고객의 발길을 유혹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마트는 2019년 잠시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견조한 실적을 올렸다. 연매출은 연결기준 22조330억원으로 역대 최대.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57.4% 늘어난 2400억원이다.

또 온라인 부문에서도 SSG닷컴이 순항 중이다. SSG닷컴은 지난해 매출 1조2941억원으로 전년대비 30% 성장했다.

롯데와 신세계의 엇갈린 실적은 유통의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향후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비대면 시대, 그리고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에서 유통시장은 단순히 상품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객이 머물고 즐기는 공간, 그 경험을 유통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스타필드는 이런 비전 위에 세워진 실험장이다.

 

도심 속 자연주의 전격 표방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새로운 유통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에 서울 지역 최대 규모의 신규 점포 ‘더현대 서울’을 개장했는데, 기존 백화점과 완전 딴판이다.

매장으로 빽빽히 채워진 기존 백화점과 달리 더현대 서울은 실내에 여유와 공간이 넉넉하다. 1층부터 6층까지 중정을 뻥 뚫어(보이드 건축 기법) 탁 트인 느낌을 더했고, 심지어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은 절대 유리창이나 시계를 두지 않는다.

고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빠져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 금기를 깼다. 심지어 이름도 ‘백화점’이라는 명칭을 빼고 ‘더현대 서울’로 지었을 정도.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 측은 더현대 서울이 여의도를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서 라고 설명했다.

더현대 서울 안에는 3층 높이인 12m 높이의 인공폭포가 있고, 5층엔 3300㎡ 크기의 실내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도 있다. 천연 잔디와 30여 그루 나무와 꽃들로 도심 속 정원을 구현하고 있다. 전체 영업 면적 8만9100㎡ 가운데 매장이 차지하는 면적은 절반이 조금 넘는 4만5527㎡ (51%) 밖에 되지 않는다. 매장 공간 비중이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평균(65%)보다 30%(14%포인트) 낮다.

나머지 절반의 공간은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고객들에게 무료로 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여타 백화점에선 유료 매장 외에는 따로 쉴 공간을 내어주지 않고 있어 대비된다. 매장을 걷는 동선 너비도 8m로 넓다. 기존 백화점의 2~4배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식음료(F&B) 매장에도 힘을 실었다. 식음료 매장이 몰려 있는 지하 1층의 천장 구조를 개방하고 층고를 높여 쾌적함을 더했다. 식품관에는 90여개 F&B 브랜드가 입점했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현대백화점 판교점 식품관보다 10개가 더 많은 수치다.

이는 여의도 상권을 반영한 배치다. 주중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수요가 몰리는 특성을 고려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식음료는 백화점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진이 낮아 그렇다. 하지만 고객의 편의를 위해 식품관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매장 공간을 줄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매장 공간을 줄임으로써 연매출 20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기적인 매출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이 편하게 방문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현대백화점 측은 말한다. “더현대 서울은 도심 속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리테일 테라피’ 개념을 적용한 국내 첫 자연친화형 미래 백화점”이라는 것이다.

 

창립50주년 맞아 2030비전 선포

현대백화점이 이처럼 파격적인 실험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건 유통 시장의 지각변동에 기인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해 백화점 3사는 모두 된서리를 맞았다. 3사의 영업이익은 평균 42.3% 줄었다. 비대면 온라인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전통적인’ 백화점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물건을 사는 공간으로만 인식된다면 더이상 살아남기가 어렵다. 더현대 서울은 쇼핑의 공간을 넘어 만나고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써 백화점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연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매장이 크고 F&B 매장과 같은 고객 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것.

정지선 회장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증권가는 고개를 끄덕인다. IBK투자증권은 더현대 서울의 손익분기점(BEP)이 2023년 달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개점 3년차 만이다. 또 개점 5년차인 2025년에는 매출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IBK투자증권의 안지영 연구원은 2016년 출점한 판교점 사례를 바탕으로 더현대 서울의 전망을 점쳤다.

한편 더현대 서울은 이른 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의 합성어)’로 불리는 유명 명품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에루샤 입점은 백화점의 성공방정식이다. 기존의 방정식이다. 이 역시 달라질 수 있을까. 더현대 서울은 이들 없이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지역 상권과도 관련이 깊다. 여의도가 오피스 상권이다 보니, 주말 유동인구가 적어, 명품 브랜드 측에서 입점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백화점 측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향후 2030년까지 매출 4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 ‘2030’을 올초 발표했다.

더현대 서울이 백화점의 미래를 제시하고, 현대백화점의 비전을 앞당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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