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대한상의 수장 된 최태원 SK회장
ESG경영 강조, 코로나 팬데믹 해법 모색도 관심집중
4대그룹 총수 중 첫 회장… 사회갈등 조정자 역할 주목

지난 1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회관 20층 챔버라운지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겸 서울상의 회장은 취재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막 서울상의회장단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기자들은 차기 상의 회장으로 최태원 SK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한 이유를 물었다.

박용만 회장은 본인이 평소 상생이나 환경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이기에 현 시점에 더없이 적합한 상공회의소 회장 후보입니다라고 간결히 답했다.

이날 회의에는 박용만 회장을 비롯해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권영수 LG 부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 서울상의 회장단 13명이 참석했다. 박용만 회장 임기만료에 따른 후임 회장 선출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박용만 회장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4차 산업 시대의 변곡점에 본인의 경험이나 이런 면에서도 훨씬 미래를 내다보는데 적합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우리나라 5대 그룹 중 하나로 우리 경제의 상당부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24대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되던 그 시간에 최태원 회장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30조원 규모의 M16 반도체 라인 준공식에 참석 중이었다. 대한상의라는 경제계의 수장 역할과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산업의 넥스트를 이날 최 회장은 함께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기 대한상의 회장 추대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대한상의와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담담하게 수락 의사를 밝혔다. 2021년 새해 벽두부터 최태원 회장의 어깨에 2개의 큰 과제가 짊어지게 됐다.

 

경영제도 3법 악영향 해소도 과제

어떻게 보면 큰 과제가 아니라 두 날개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SK그룹을 이끌어갈 미래 산업인 반도체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도 다른 한편 재계의 대표로 경제와 사회 전체의 과제를 풀어야 하는 운명을 안게 됐다. 오는 23일 서울상공회의소 의원총회에서 서울상의 회장에 선임되면,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각 지역상의 회장들과의 회동을 거친 뒤 324일 대한상의총회에 추대돼 정식적으로 대한상의 회장에 선출된다.

회장 선정 절차 면에서 아직 한달 넘게 공식 선출이 남은 건 사실이지만, 역대 대한상의회장은 단독 추대가 많았고 최 회장이 수락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지난 21일은 대한상의에 새로운 역사를 여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상의는 회원사만 18만개에 달한다. 출범 역사로 따지면 138년을 자랑한다.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과 함께 한국경제의 대표 법정 경제단체다. 특히 이번에 최태원 회장 추대로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회장을 맡게 되는 첫 기록도 나왔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했다는 사실만으로 재계에 큰 변곡점이 됐다. 우선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과 소통이 잦다. 그 모임에선 나이에 따라 맏형 역할을 했다.

1960년생인 최태원 회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룹 총수 가운데 젊은 축에 속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건희, 구본무, 조양호 회장 등이 별세하고 정몽구, 허창수, 박삼구, 조석래 회장 등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면서 재계 주요 그룹 총수의 연령대는 현재와 같이 40~50대로 급격히 젊어졌다. 이렇게 몰아치는 세대교체의 바람 속에 최태원 회장은 자연스럽게 맏형급의 리더로 올라선 것이다.

이제 최 회장보다 연장자라고 할 수 있는 총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도다. 이런 시기에 최태원 회장이 4대 그룹 맏형에 걸맞게 대한상의 회장에 오르게 된다면, 앞으로 대외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적지 않은 파급력이 증대될 걸로 보인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사회적 가치에 있다. 대한상의는 이윤추구 집단이 아니다. 현 사회에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내고 기업의 권익을 신장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 운동에 있어 선봉에 섰던 최 회장이 박용만 회장에 이어 한국경제에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1일 열린 SK하이닉스 본사 M16라인 준공식에서도 최 회장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협력회사 상생, 환경보호, 지역사회 발전 등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금 경제계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기업 경영은 올해도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경영제도 3(일명 기업규제 3)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해소시킬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공동해법 모색도 필요하다. 재계의 맏형으로 최태원 회장이 경제와 사회의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조정자로 당장 나서야할 판이다. 재계를 대표해 정치권과 노동계와 만나 각종 현안 이슈를 조율해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고 힘을 내줘야 하는 시기다.

 

행복나래,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 추대된 가장 큰 명분은 아마도 평상시에도 그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 회장이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이야기는 이미 재계에서 유명한 사실이다. 사회적 가치 구현을 기업 경영의 핵심목표로 내세운 대기업의 경영자는 극히 드물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정도가 사회적 가치를 기업경영 화두로 내세우는 정도다.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벌써 12년이나 지났다. 당시 최 회장은 경영권 분쟁으로 대표되는 소버린 사태 이후 SK그룹의 경영 안정성을 되찾고 있었다.

그뒤로 최 회장은 어쩐 일인지 효율적인 사회공헌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 대학교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국제 포럼에 참석하면서 그 고민은 본격화됐다. 그는 이 행사에서 사회적 기업이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 뒤로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SK그룹 전체의 계열사까지 빠르게 전파된다. 이후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육성하는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최 회장은 그룹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계열사인 행복나래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과 그 가치에 대한 개념은 그가 2014년에 출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에 거의 다 정립돼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7년 열린 한 행사에서 운동을 할 때 근육을 키우는 데 너무 집중하면 관절이 망가진다기업이 돈만 벌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으며 사회적 가치 추구는 결국 관절을 보호하기 위한 관절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이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일이라는 말이다.

 

사회적 가치가 지속적 성장엔진

그렇다면 과연 사회적 가치 추구가 기업의 영속에 도움이 될까? 대표적인 사례로 다국적 소비재기업 유니레버를 들 수 있다. 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실제로 기업의 영리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유니레버는 네덜란드의 유니와 영국의 레버브라더스가 합병하면서 설립된 다국적 소비재기업이다. 립톤 아이스티, 바셀린, 도브 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다.

유니레버는 극심한 매출 정체를 겪다가 2009년 경쟁사 네슬레의 미국 법인 부사장이던 폴 폴먼을 CEO로 선임했다. 폴 폴먼은 취임 직후 유니레버의 사회공헌부서(CSR)를 없애고 회사의 모든 부문이 사업단계에서부터 CSR을 살피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제시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2009400억 유로였던 유니레버의 매출은 7년만인 2016527억 유로로 30% 넘게 성장했다. 폴 폴먼이 취임 직후 이룬 성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시장에서의 성과였다. 유니레버는 베트남 사람들의 구강청결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에 주목했다. 유니레버는 적극적으로 베트남에 구강청결과 관련된 공익광고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웃어요, 베트남이라는 광고가 이때 나왔다. 이 공익광고는 베트남 사람들의 구강청결 인식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치아 건강이 양호해지는 한편 유니레버의 구강청결제의 판매량도 함께 급증했다.

최태원 회장은 기업이 이윤 추구만 한다면, 시장경쟁과 변화에 따라 흥할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 대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 그 사회와 구성원이 존속하는 이상 지속가능한 기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평사시에 사회적 가치 추구는 SK의 힘만으로는 끌고 나갈 수 없으며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아마도 3월에 새롭게 출항하는 최태원의 대한상의는 사회적 가치 추구라는 경영화두를 밑바탕에 깔고 힘차게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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