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규제, 현실 직시해야
무조건 시행땐 中企 존폐기로
생산성 높일 지원대책이 우선

권혁(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혁(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월화수목금금금. 마땅한 자원도 없고, 그럴 듯한 설비도 없으며, 내로라 할 기술도 없었던 나라가 성장하자면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도 그런 부지런함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92시간에 달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 통계가 이를 말해 준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정보통신 인프라도 두텁게 마련돼 있고 최첨단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서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성장 전략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7,80년대 고도 성장기의 성장전략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 노동전략은 분명하다. 노동시간의 양이 아니라 을 우선하는 일이다. 노동의 질은,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으로부터 나온다. 근로자 스스로가 자기 건강을 돌 볼 여유조차 가지기 어렵다면 그런 기업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장시간 근로의 관행을 깨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20187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법제화됐다. 그 전까지는 주68시간 상한제였으니 무려 16시간 감축정책이었던 만큼 사업장 규모별 적용시기의 차등화는 불가피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선 300인 이상인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먼저 적용하되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는 202011일부터, 그리고 202171일 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도록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면서, 이례적으로 고용노동부는 1년의 계도기간을 추가로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 계도기간마저 종료됐으니, 20211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그 위반에 대해 과태료가 부과될 것이다. 그리고 올해 71일 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52시간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정부는 예정대로의 시행에 방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추가적 적용유예나 계도기간을 더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더 찜찜하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이중구조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 수준이 높은 것은 단지 평균값이 그렇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노동현장만 보면 1980년대와 2020년대가 뒤섞여 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오랫동안 노동시장의 극단적 이중구조 심화를 해소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는 게 총평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획일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방식을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당초 의도했던 노동입법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거니와, 오히려 갈등만 더 증폭시킬 수 있다. 노동현실에 맞는 규제여야 한다. 52시간제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주52시간제가 뒤탈 없이 정착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세한 중소기업도 그리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구직자로 넘쳐나는 대기업도 있지만,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이 실은 더 많다. 당장 신규인력도 찾기 어려운데 근로시간을 줄이면, 공장가동을 포기하라는 것이냐며 사업주가 하소연한다. 그들에게 왜 그동안 준비를 안했냐고 타박할 수 있을까. 아직도 중소기업에서는 그나마 연장 특근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많다. 저들인들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힘든 일은 계속하되 연장근로는 줄이라고 얘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혹여 52시간제가 영세중소기업 근로자에게만큼은 딴 나라 얘기가 될까 사뭇 걱정이다. 이게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장시간 근로를 시켜도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오죽하면 그리하겠나 싶어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방향과 목표는 분명하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섬세해야 한다. 법으로 강제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만이 상수(上手)는 아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대한 규제방식과 영세중소기업에 대한 규제방식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인력 충원을 용이하게 해 주고 노동생산성을 높여서 실질임금이 낮아지지 않도록 할 지원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사용자도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만 기대서도 안 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숨 막히게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정부와 중소기업의 협업이 실효성을 거둘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잘 살아 보겠다고 그저 앞만 보고 밤낮없이 일해야만 했던 영세중소기업 근로자들과 사용자들에게, 일하지 말라고만 얘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노사 모두에게 이제 좀 여유를 가지시라격려이어야지, ‘규제가 돼서는 안 된다.

 

- 권혁(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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