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앞도 못 내다본 어리석음
▲안타까운 우국의 선견지명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병조판서의 자리에 올라 10만 양병론을 진언하기 전에 일찍이 당시의 내금위(內禁衛) 말직에 있던 이순신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유성룡에게 “장차 삼한(三韓)을 구제할 인물이니 기회가 있을 때 조정에 천거해 등용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율곡은 병조판서로 임명된 이듬해(임진왜란 발발 10년 전)인 1582년 임금 앞에서 학문을 강론하는 경연(經筵) 때에 선조에게 진언하기를 “우리나라는 태평한 지 이미 오래돼 방심함이 날로 심합니다. 내외가 공허하고 군사와 식량이 모두 궁핍하기 때문에 오랑캐가 조금만 변경을 쳐들어와도 온 나라가 시끄러우니, 만일 오랑캐들이 크게 침범해 온다면 비록 지혜가 있는 자라도 대책이 없을 것입니다.
미리 군대 10만 명을 길러 급한 때를 대비하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못돼 나라가 토담 무너지듯 화(禍)가 있을 것입니다. ”
율곡은 10만의 군사를 양성해 서울에 2만명, 각도에 1만 명씩을 배치해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경연에 함께 참석하고 있던 신하들이 모두 태평성대에 무슨 전란설(戰亂說)을 들먹거리며 민심을 소란케 하려는 거냐고 반대했으며, 율곡을 존경하고 따르던 유성룡까지도 “일이 없이 군대를 만드는 것은 화근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율곡의 의견에 반대했다. 결국 율곡의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율곡은 대궐에서 물러 나왔을 때 유성룡에게
“나라의 일이 위험한데도 이 시대의 풍속에 젖은 선비들은 이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네. 그런데 다른 사람이야 진실로 기대할 게 없지만 그대 마저 그런 말을 하는가?”라고 그 안타까운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희망과 꿈은 단짝이다. 어리석거나 헛된 꿈이 참된 희망을 낳을 수는 없다. 시대를 내다보지 못한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을 일시적으로 우물우물 덮어버리려 했던 거짓 희망은 스스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당색(黨色)만이 아니라 거짓 희망이 국가의 명운을 갈랐다.
황윤길: “(풍신수길의) 그 눈빛이 밝게 빛나 담략과 지혜가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틀림없이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김성일:“그 눈이 쥐와 같이 생겼으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신(臣)은 (전쟁을 일으킬) 그와 같은 정황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그들의 속내와 진실
유성룡:(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이 황윤길과 다른데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앞으로 어찌 하겠소?”
김성일:“내 어찌 적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혼란이 일어 백성이 현혹될까 이를 해결해보려고 한 일이오.”
어리석은 꿈과 거짓 희망
사관(史官)은 임금께 아뢴 황윤길의 전쟁이 날 것이라 말은 태평성대에 백성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으니 그의 말은 사리에 어긋난다고 평가했으며, 김성일이 황윤길과 정반대로 진언한 일은 조선사신이 국서를 올리면서 외교적 격식을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풍신수길은 오만불손하게 행동하고 국서도 주지 않고 조선사신이 돌아가면 보내겠다는 무례한 짓을 자행했는데도 황윤길은 이에 정당한 주장과 항의를 못하고 체통없이 행동해 이를 통분한 김성일이 말끝마다 의견을 달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임금은 권력은 잃은 서인계열의 황윤길이 백성의 민심을 어지럽히려는 계책 때문이라 그의 진언을 배척했다고 왕조실록에 기록했다.
통신사 김성일의 ‘전쟁은 없다’는 주장은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 당색에 좌우된 거짓 신념이며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말로 민심이 흉흉해질 불안이 감춰지길 바라는 허망한 꿈이요 헛된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무능한 임금의 게으른 행위, 권력유지를 위한 당파이기주의 행위 등은 나라의 명운을 가르고만 죽음의 행위가 되고 말았다.
희망과 신념은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희망은 신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희망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이며, 신념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신념이 올바르지 못하면 참된 희망을 이루지 못한다. 과거의 역사는 오늘을 비춰준다.
지난 일을 거울삼아 오늘 올바른 희망의 좌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 종 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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