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위배되는 기준 다수
유례없는 징벌적손배 입법화
소송제기시 위헌판결 가능성

정진우(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지난해 산재사망사고가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처벌을 대폭 강화한 김용균법이 시행된 이후 오히려 사망재해가 늘어난 것이다. 그것도 근로감독관 수와 산업안전공단 직원 수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의 성적이라서 심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자수가 많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이 고장 나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 수치는 시스템 개선 없는 처벌강화가 재해감소가 아니라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재해를 감소시키려면 엄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은 재해예방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비용만 많이 초래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법 제정과정에서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재해 예방을 위한 진지한 논의 보다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는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당초 중대재해법의 모델로 삼은 영국의 법인 과실치사법과는 달리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을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중복 규정하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보니, 노사 양쪽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사생아가 탄생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도 없이 무작정 엄벌에 처하겠다는 무모함 앞에서 이성적 토론과 사유는 설 땅이 없었다.

중대재해가 왜 많이 발생하는지, 어떻게 해야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엄벌이 마치 중대재해를 줄이는 요술방망이나 되는 것인 양 여론을 호도하기에 바빴다.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개선하거나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을 혁신할 진정성과 전문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처벌만능주의라는 이념에 사로잡힌 채 중대재해법을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삼으려는 정치공학만이 난무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로 단 한 번만 한 채 일정을 무리하게 못 박아 놓다 보니, 졸속심사와 내용부실은 이미 예상됐다. 법안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첫째,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불명확하고 모호한 내용이 많다. 예컨대, 한 사업장에서 소유자, 운영자, 관리자가 별도로 있는 경우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이현령비현령식의 자의적 법집행이 불을 보듯 훤하다.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하다 보니, 준법의지가 강한 경영책임자라 하더라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예방조치를 해야 할지 몰라 실제조치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둘째, 경영책임자가 도저히 준수할 수 없는 비현실적 조치 또한 적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도급이나 용역을 준 경우, 이를 받은 영세업체의 재해 재발방지대책 수립이나 영세업체에 대한 관공서 지적사항의 이행조치를 중소기업 측에서 그것도 경영책임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식이다. 준수할 수 없는 기준을 들이대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셋째,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를 인정하는 영미법 국가에서조차도 형사처벌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대체수단으로 인정되는 것이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에 대해 이중제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전 세계 유례없이 형사처벌과 병과하는 식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입법화했다.

넷째, 이 법의 유예기간 동안 사망자의 직접 고용주인 50명 미만 하청업체의 경영책임자는 법적용에서 제외되는데, 사망자와 간접적 관계에 있는 50명 이상 원청업체의 경영책임자는 이 법에 따라 처벌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부할 여건은 만들어 주지 않고 매질만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 수 없듯, 재해 예방의 실질적 여건 조성에 무관심한 정부는 결코 좋은 정부일 수 없다. 준법여건 조성 없이는 처벌 자체가 목적인 법이 되고 만다.

법의 제정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도 졸속으로 심사한 만큼 법안 곳곳에서 허점과 무리가 발견된다. 위헌소송이 제기된다면 위헌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법은 대폭 개정돼야 한다. 그것도 하루빨리.

- 정진우(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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