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우리나라.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게 맞는 말인지조차 의심을 들게 한다. 지난해에 이어 아직도 눈을 보지 못해서인지 겨울이라는 계절변화를 느낄 수 없다. 한해가 마감되는 12월임에도 그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할 수 없는 것도 아쉬운 한 현상중 하나다. 애써 찾아내야 하는 겨울 풍광. 썰렁한 산보다는 웬지 계절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 아침이면 바다 위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일출은 물론이고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나는 한 낮의 바닷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즈음 여행지로 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동해안 바다 여행이다. 눈 구경이 어려워 설경감상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서도 바다가 보고 싶었다.
밝은 하늘과 쪽빛 바다는 잠시동안만 행복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내 식상해지는 것은 여행에 대한 욕심이다. 동해는 일출이 아니고서는 아무 감흥도 없다. 비슷한 바다와 어촌 풍광. 이제 가보지 않아도 꿰뚫을 만큼 모습이 환히 그려지는 곳들 뿐. 하지만 주문진 항구 위에 있는 소돌 해변을 만났을 때 그건 ‘잘난체’였음을 즉각 알 수 있었다.
동해안 해변을 따라 이리저리 들러보다가 찾아간 소돌해변. 수없이 찾아온 주문진 항과 인접해 있는 이곳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 이상할 만큼 기묘한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마치 속초 대포항을 지나치면 만나는 외옹치항처럼. 하지만 외옹치보다 훨씬 해안 풍경이 아름답다. 물론 바다를 장식하고 있는 기암이 있는 곳이 어디 이곳 뿐이겠는가? 하조대의 기암이나 추암의 기암 등. 그렇지만 그곳은 이제 말하지 않을 만큼의 유명세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주문진항을 지나 ‘북부 해안도로’라는 팻말을 따라 올라가면 소돌항을 만날 수 있다. ‘소돌(주문진읍 주문리)’이라는 해변 이름도 아름답다. 작은 돌이 많아서 소돌인가 싶었더니 마을 전체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되어있다 하여 소돌(牛岩)이라고 부른단다. 마을 앞 선착장에는 여느 어촌에서 볼 수 있는 방파제와 등대가 있다. 그 앞으로는 자그마한 어시장이 형성된다. 다라이에 싱싱한 횟감을 채워 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어시장옆으로는 ‘아들바위 공원’이라는 돌 팻말이 있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면 바닷가 주변은 크고 작은 돌이 가득하다. 공원을 보여주려는 듯 자연석 사이로 조악하게 만들어 놓은 조형물도 두어기. 찰랑찰랑 파도를 치며 바위를 건드리는 바닷물은 육안으로 보아도 푸른 옥빛이다. 즉석 회를 썰어 먹는 사람들, 술추렴 하는 사람들, 낚시 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북적인다. 어찌 알았을까? 누가 일러주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곳에는 찾는 이가 많다. 아들바위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안쪽으로 들어서면 제법 크고 독특한 바위 덩어리를 만날 수 있다. ‘아들바위’라 붙여진 이유는 ‘일억오천만년전 쥬라기 시대에 바닷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지상에 솟은 바위로 옛날 노부부가 백일기도 후 아들은 얻은 후로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다. 남근 형태의 바위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으로 바위를 찾으면 아무리 헤매도 없을 것이다.
아들바위라는 명칭이 붙지 않은 바위들도 기이하게 생긴 것들이 많다. 소를 닮았다고 해서 ‘소바위’라 불리는 것이 있고, 코끼리의 머리형상을 닮아 이름 붙여진 ‘코끼리 바위’는 그 닮은 모습 뿐만 아니라 기괴한 형상 때문에 일명 ‘해골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다속에 들어 앉아 오랜 풍상을 겪은 바위들은 기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냈다. 파도는 바위를 부닥치면서 금방이라도 물이 쳐 들어올 것 같은 요란한 소리만 낸다. 크고 작은 바위는 징검다리처럼 잘 연결되어 이곳 저곳 발에 물 안적시고도 돌아 다닐 수 있다.
바다에는 자그마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사람도 눈에 띈다. 멀리 가지 않고 인근에서 잡히는 고기는 무엇일까? 어쨌든 이런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그냥 떠날 수가 없다.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숙소에서 긴 겨울 밤 보낸다. 밤은 왜 이렇게도 길단 말인가.
새벽 6시가 넘은 시간. 서둘러 소돌항으로 나선다. 멀리 동쪽을 향해 붉은 해가 길게 붉은 줄을 그어 놓고 있다. 사진 포인트를 찾는데 방파제 옆으로 많은 오토바이가 멈춰 선다. 낚시객인가 싶었는데 그들은 하나둘 어선을 챙겨 바다로 나선다.
겨울 바다의 찬 기운은 이른 아침에서야 심하게 느낄 수 있다. 날씨 따뜻하다고 비웃음치던 일에 복수라도 하듯 손은 추위로 곱아진다. 디카도 추위에 못 이겨 사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저 내 마음속에, 가슴속에 해를 담아 내야 한다. 이른 아침 고기를 잡아 경매를 부치는 사람들과 상인들, 어시장을 찾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곳. 어쨌든 머지 않아 이곳 또한 손때가 묻게 되고 이름 또한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래도 북적함과 한적함이 공존하는 이곳 새해맞이 여행지로 손꼽을 수 있지 않을런지.
■대중교통 : 강릉에서 시내버스(31, 31-7번) 소돌해수욕장까지 10분 간격 운행, 30분 소요. 주문진에서 시내버스 소돌해수욕장까지 10분 간격 운행, 10분 소요.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 주문진 종점(7번 국도-주문진읍내 방면)-소돌해수욕장
■별미집과 숙박 : 연곡해수욕장과 영진항이다. 영동고속도로 새길이 주문진까지 이어져서 다시 돌아나와야 하는 불편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허브향이 가득한 돔 하우스(033-662-0131)나 영진횟집(033-662-7979, 민박 가능)을 아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영진항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곳이 영진횟집(033-662-7979)이 괜찮다. 주문진 항구 주변에 있는 수많은 맛집 중에서 파도식당(033-662-4140, 우진장 여관골목만 기억하면 된다)은 탕의 국물맛이 시원하고 곁들여지는 반찬도 괜찮다. 주문진에는 수산물 센터가 있고 뽀빠이 횟집(033-661-9898)에서는 잡어 물회밥을 꽤 잘 만드는 곳이다. 시원한 국물은 해장용으로 좋다. 연곡해수욕장 가는 초입에 있는 돔 하우스(033-662-0131)는 허브향이 가득한 곳으로 차 한잔 하기에 좋다. 숙박은 주문진가족호텔(033-661-7400)이나 민박, 모텔 등이 많다. 24시 찜질방도 해안 끝자락에 있다.

◇사진설명 : 강원도 주문진 소돌의 일출은 새해맞이 여행지로 손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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