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경영 속도 내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
브랜드 1위 이미지 구축 정조준
남양연구소 혁신… 청사진 제시
비어만 사장 영입, 능력위주 인사
사내 노조·소비자와도 적극 소통
토요타 자동차와 ‘글로벌 톱’맞장

정의선 회장이 지난 10월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직에 오르면서 이 회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3세 경영이 본격 시작됐고, 세계 완성차 업체들과 미래 자동차를 누가 선점하느냐는 경쟁이 가속화된 것이다. 새로운 출항과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의 길이 동시에 열렸다.

곧 다가올 2021년은 현대자동차그룹에게 아주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그룹의 위상이 자동차 세계시장에서 미래 시장을 주도하는 리더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대차그룹은 품질을 잡아야 한다.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는 언제나 최상의 품질과 무결점의 제품을 추구한다. 정의선 회장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첫 미션으로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행보를 정리해 보자. 정의선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기 직전에 단행한 일이 있다. 바로 잇단 차량 화재로 논란이 된 전기자동차 코나의 전 세계 리콜을 결정한 것이다. 취임을 한 뒤에는 앞으로 발생할 품질비용을 미리 대비하고자 3조원이 넘는 충당금을 쌓겠다고 발표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품질 개선을 위한 의지였다.

품질은 품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 디자인팀, 개발팀, 영업팀 등 각각 부서별 미션이 따로 있다. 그런데 요즘 현대차그룹은 전체 부서가 품질을 한 단계 높이는 작업에 긴장감을 갖고 뛰어들고 있다.

 

MK, 몸집키우기 품질경영

품질경영은 자동차 기업에게 언제나 최대 화두였다. 자동차 시장처럼 매년 디자인이 개선되고 상품을 향상시켜 신모델을 선보이는 치열한 산업분야도 없다. 일반 사람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구매하는 상품은 자동차가 거의 유일하다. 그것도 평생 한번만 구매하는 것도 아니다.

5년만 지나도, 다른 신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자동차 시장이다. 중고차 시장의 규모는 또 어떤가? 신차와 중고차 시장까지 포함한다면,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자동차 대수가 더 많다. 이렇게 넘쳐나는 자동차를 구매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바로 품질이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기계가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명제는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정의선 회장의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 시절부터 현대차그룹은 품질경영을 제일 앞세웠다. 정몽구 회장은 재임 시절 신년사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생산 공장을 준공할 때마다 찾아가서 임직원들에게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품질은 단순히 자동차 몸체나 도색이 제대로 된 걸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의 생명과 직결되는 본연의 경쟁력과 브랜드 이미지다.

정몽구 회장이 지난 1999년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일화다. 미국의 자동차 품질조사기관인 JD파워에 품질 관련 컨설팅을 받도록 지시하고, 양재동 본사 사옥에 ‘JD파워의 충고라는 글귀를 적은 액자를 적고 품질경영을 항상 기억하게 한 적도 있다. 당시에 현대차그룹은 품질에 있어 충고를 들어야만 할 정도로 세계 완성차 업체를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그룹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품질은 과거에 비해 정말 눈이 부시게 많이 개선되긴 했다. 충고를 새겨들은 덕분인지 JD파워의 최근 평가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나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세계시장에서 가속페달을 밟던 2010년 전후로 해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통합 판매량으로 글로벌 5대 자동차 회사가 됐다.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의 현대차 시대를 뛰어넘어 더 높은 품질경영 도전을 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때는 품질경영이 불량률을 최대한 낮추고 빠른 속도로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 정의선 회장 시대는 글로벌 1등 제조기업이 꿈의 맨 꼭대기다. 아버지가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품질 경영을 했고, 아들은 브랜드 1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품질 경영에 뛰어든 것이다.

 

축구장 500개 규모 연구소 조성

정의선 회장은 품질 개선을 위해 남양연구소를 혁신 중에 있다.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단계부터 품질경영의 DNA를 넣겠다는 것이다. 품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만 잡게 되면 근본적인 퀄리티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남양연구소는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의 핵심기지다.

이 연구소는 1980년대 서해 남양만을 매립한 땅 위에 만들어져 남양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80년대부터 현대차그룹은 지금의 땅을 매립해 주행시험장 등을 짓기 시작했고 2003년 현대차 울산연구소와 기아차 소하리연구소를 통합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오랜 역사만 놓고 봐도 현대차그룹의 시작과 현재와 미래가 바로 이 연구소에 오롯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연구소의 규모나 기능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전체 규모가 축구장 500개와 맞먹는다. 종합주행시험장은 기본적으로 갖춰졌고, 바람의 영향을 판단하는 풍동시험장과 디자인 연구소가 있다. 풍동시험장 규모만 축구장 크기 면적이다. 현대차그룹의 모든 신차에 대한 디자인과 설계에 대한 기본이 여기서 나온다.

남양연구소를 어떻게 혁신하느냐가 현대차그룹의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이 20189월 수석부회장에 오르고 첫 인사를 시행했는데, 첫 번째 스타트가 바로 남양연구소 최고책임자를 바꾼 것이다. 사실 그 전에 남양연구소는 약간의 내홍이 있었다. 당시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이 남양연구소의 투톱으로 있었는데, 둘간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20189월 인사의 초점도 거기에 있었다.

정 회장은 당시 양 부회장과 권 부회장을 고문으로 물러나게 하고 현대기아차 고성능차사업을 이끌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에게 연구개발본부장을 맡긴다.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을 연구개발본부장에 맡긴 것이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BMW 출신 유명 엔지니어로 현대차에 올 때도 화제가 됐다. 인사의 메시지는 품질경영을 위해서는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실력만 본다는 것이었다.

비어만 사장 체제 이후 남양연구소는 뭐가 달라졌을까? 그가 책임자에 오른 후 6개월 뒤 조직개편이 일어난다. 남양연구소가 대규모 조직개편을 한 것은 2012년 이후 7년 만인데 5개 담당의 병렬구조로 돼 있던 조직을 제품통합개발담당, 시스템부문, 프로젝트매니지먼트담당의 삼각형 구조로 단순화했다. 현재 연구소는 자체 직원 평가에서도 효율성 있는 곳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비어만 등용 이후 정 회장은 올해 들어서도 외국인 전문가를 속속 품질 관련 분야에 영입한다. 상용개발담당에 다임러 출신의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을, 자동차 핵심으로 평가되는 파워트레인 담당에 PSA출신의 알렌 라포소 부사장을 중용한다. 정의선 회장의 남양연구소 변화는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수소차·자율주행차에 초점

정의선 회장은 품질 개선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외부에서는 내연기관을 넘어 전기차·수소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제품에 포커스가 맞춰졌다고 진단한다. 자동차가 기존에는 기계덩어리에서 이제 전자 제품처럼 뒤바뀌는 중이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이 아무리 품질경영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미래차 시장에서 품질개선은 가보지 않은 길이 된다.

정의선 회장은 이 길을 함께 가기 위해 노조와도 소통 중이다. 수석부회장에 오른 뒤에 얼마 지나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노조 지부장을 만난 적이 있다. 품질경영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대기업 오너가 노조 대표를 만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지난 3분기 3조원 규모의 품질비용 충당금을 설정할 때도 이례적으로 실적 발표 전에 기업설명회를 열고 시장과 소통한 것도 드문 경우다. 소비자에게 제대로 목적으로 알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갈지 정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현대차그룹에게 품질경영에 있어 언제나 주요 라이벌로 삼는 곳이 있다. 일본의 토요타자동차다. 토요타는 일본 제조업체에서도 품질개선의 대명사다. 토요타는 자동차 회사 가운데 최초로 각 생산 단계의 철저한 표준작업을 만들었고 품질역량을 극대화했다. 그 용어가 바로 자체 생산방식인 TPS(Toyota Produc tion System). TPS는 국내 제조기업에서도 참고하는 품질 교본이다.

정몽구 회장이 과거 품질경영을 시작할 때 토요타와의 격차는 너무 멀었다. 그러나 이제 두 회사는 근소한 격차로 달리고 있다. 실제 JD파워 평가를 보면 현대기아차는 토요타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신차를 뽑은 뒤 3개월 안에 진행하는 초기 품질조사가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품질 평가의 기준이다. 여기서 현대차, 기아차, 제네시스 모두 토요타와 렉서스를 모두 앞선다.

그러나 토요타가 현대차그룹 보다 잘 하는 품질경영의 노하우가 있다. 토요타는 품질에 대해 솔직하고 고객과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다. 토요타는 리콜에 대해 직설적이다. 토요타의 글로벌 웹사이트에는 리콜 페이지가 따로 있다. 리콜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 보다 자사의 자동차에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고객이 리콜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물론 신규 리콜통보도 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품질 경영의 방향은 고객과 시장과 소통하는 품질 개선이 아닐까 싶다. 특히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같은 미래차로 급격하게 바뀌는 시점에서 소비자의 마음에 1등 브랜드로 남기 위해서는 품질 문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 소통하는 현대차그룹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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