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쉴레_가족, 1918
에곤쉴레_가족, 1918

한해가 거의 지나가고 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세는 여전히 꺾일 줄을 모른다. 사실 전염병의 전 지구적 유행은 역사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어디서 나타났고 왜 사라졌는지 치열하게 탐구하는 예술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위기를 정면으로 관통했다.

 

인류 괴롭혀온 불청객

천연두, 콜레라, 황열병 등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잊을 만하면 인류를 덮쳤다. 특히 1918년부터 1년 반 정도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은 많게는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 가운데 환자의 몸이 검은 반점으로 뒤덮이며 죽음에 이른다 해서 흑사병(Black Death)’이라 불렸던 페스트는 가장 두려운 역병이었다.

1348년 흑사병 대유행으로 전 세계에서 약 7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돼 몽골군의 침략과 함께 유럽 쪽으로 접근했고 제노바에 기항한 무역선을 통해 전 유럽으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

흑사병으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구원을 갈망하며 성당을 건설해 중세 후반기에는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는 고딕 양식의 성당들이 앞다퉈 생겨났다.

최초의 근대 소설로 불리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 흑사병의 유행을 피해 교외의 별장으로 모여든 피렌체 남녀 열 명이 각자 열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준다는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데카메론>에는 1348년의 흑사병 대유행 으로 피렌체 한 도시에서만 1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16세기 초반 독일 미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젠하임 제단화>는 간접적으로나마 흑사병 유행의 공포를 그림으로 암시한 작품이다. 1512~1516년 사이에 독일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그린 작품으로 열거나 닫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닫힌 상태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의 고통에 직면해 있는 예수의 모습이, 열린 상태에서는 수태고지와 예수의 탄생 그리고 예수 부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놀라운 부분은 죽어가는 예수의 몸에 생겨난 푸릇푸릇 한 반점이다. 흑사병 증상과도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16세기 초반 흑사병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죽음의 형태였다. 그렇다 해도 예수가 흑사병과 엇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죽어간다는 설정은 자못 충격적이다.

 

에곤쉴레_늦가을의 작은 나무, 1911
에곤쉴레_늦가을의 작은 나무, 1911

두려움을 예술로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의 그림 <아슈도드에 번진 흑사병>은 전염병을 그림 주제로 삼은 드문 작품이 다. ‘아슈도드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교도의 도시다. 사무엘 상편 5장에는 이교도를 숭배하는 아슈도드 지역의 사람들이 하느님에게 징벌을 당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푸생은 그 징벌을 흑사병으로 재해석했다.

인류의 역병에 대한 공포는 스페인 독감으로 절정에 달했다. 정체불명의 병에 쓸 수 있는 치료제는 없었고 전염된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시인 아폴리네르, 화가 에곤 쉴레 등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그중에서도 만 28세에 불과했던 에곤 쉴레의 죽음은 참으로 아까운 손실이었다.

에곤쉴레_죽은 엄마, 1910
에곤쉴레_죽은 엄마, 1910

오늘날 현대미술의 패러디와 같은 풍자와 해학적인 모습과 다른 엄중하고 뼈아픈 시대가 그의 캔버스에 그대로 담겼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너무도 무서운 재능이라고 불렀던 에곤 쉴레는 조숙한 천재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젊은 시절부터 죽음이란 주제에 기이할 정도로 집착했다. <죽은 엄마>란 그림에서 화가는 아이를 임신한 채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쉴레에게 성()은 새 생명 탄생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통로로 여겨졌다.

병적으로 예민했던 쉴레의 감성은 이상적인 연인 에디트를 만나며 한결 누그러졌다. 하지만 끈질긴 죽음의 그림자는 불현듯 그의 가족을 덮쳤다. 1918년 가을, 에디트가 임신한 상태로 스페인 독감에 감염됐다. 쉴레는 어머니에게 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치명적인 상황이다라고 담담하게 쓴 편지를 보냈다. 당시 쉴레도 이미 감염된 상태였다. 에디트는 쉴레가 편지를 쓴 다음 날 사망하고 그로부터 사흘뒤 쉴레도 스물여덟의 나이로 에디트를 따라간다.


- ·전원경 문화콘텐츠학 박사
- 한국메세나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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