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칼럼]이기호 대구경북연료공업사업협동조합 상무이사
겨울철 서민 몸 녹이던 구공탄
가스중독 사망소식 ‘단골뉴스’
코로나 탓 올해 연탄후원 급감
어렵던 지난 시절 되새겼으면

이기호 상무이사
이기호 상무이사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짧은 시 구절은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에 죽비와 같은 일갈이었다. 자신의 온 몸뚱이를 불태워 한겨울 아랫목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는 하얀 재로 전락하는 연탄. 연탄이 어느 날 땅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고서도 빙판길 미끄럼방지용 재 가루로 흩어지며 마지막 봉사를 하고 사라지는 연탄재. 누구나 하찮게 여겼던 연탄재에 이렇게 뜨거운 의미를 부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했다.

우리나라에서 난방용으로 연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 이었는데 처음부터 목탄() 대용품으로 취급됐다. 1930년대에는 구공탄이 연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구멍이 많을수록 불이 잘 붙고 잘 꺼지지 않았기에 제조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구멍수도 늘어 해방 뒤에는 19공탄 22공탄. 25공탄 등이 속속 출시됐다.

우리나라에서 연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다.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석탄과 물을 섞어 만든 수타식 연탄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그 후 태백선 철도개통으로 강원도 광산이 본격적으로 석탄생산, 공급이 급증했고, 이때 가정용 아궁이 개조도 있었다.

1970년대 산림녹화 정책시행과 함께 농촌지역 연탄보급과 연탄온수보일러 개발로 연탄사용량은 절정을 이뤘다. 1980년도 말에는 연탄의 안정적인 공급과 석탄비축이 겨울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핵심과제였다.

연탄은 서민들의 겨울 일상 모습도 바꿨다. 연탄 없는 겨울은 생각할 수 없었고, 집집마다 연탄불 관리가 중요한 일상사였다.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도 일어나 새것으로 갈아 넣어야 했다.

하지만 연탄가스는 골칫거리였다. 겨울철 연탄가스중독사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가하면, 농촌에서 올라온 하숙생들도 많이 희생됐다.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거의 도시의 가난한집에서 일어났다. 1980년대 중반이후 기름과 가스보일러가 보급되면서 겨울철이면 신문사회면을 채우던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알리는 비보(悲報)가 사라져갔다.

지금도 연탄은 따뜻한 온기의 원천으로 남아있다. 저소득층과 노인가구등 소외계층에게 특히 그렇다. 전국연탄은행이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연탄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올해는 걱정이 크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 지원 요청은 늘고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후원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연탄 기부는 90만장으로 지난해 절반 수준에 불가하다. 길어진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을 소외계층이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연탄은 다른 에너지에 비해 저렴해 우리 서민들 곁에서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존재다. 주변에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이 없는지 한번쯤 되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다. 어렵던 지난시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탄이 올겨울 우리에게 묻는다. 어느 시인처럼 당신은 그 누구를 위해 한번이라도 뜨거워 본적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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