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더불어 살아간다. 부모ㆍ형제ㆍ부부ㆍ벗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리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우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원동력은 자연 속에 있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 비로소 삶을 지탱할 수가 있으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그밖에는 자기 생명을 창조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그런데 서양사회는 근대에 이르러 인간을 자연과 완전히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해 자연을 외면한 채 인간만을 존중하는 인간중심주의로 기울어져, 이때부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결과로 생명을 지탱해주는 자연 환경이 더럽혀지고 마구 파괴돼 가뭄, 홍수, 태풍 등 갖가지 자연적 재앙이 일어나며 인간이 끊임없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자연 자원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과 달리 예전부터 우리 겨레는 인간[身]과 자연[土]은 하나요(身土不二), 자연의 따뜻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예전 어른들은 언제나 자연을 본으로 삼아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 한 예로 콩을 심을 때 콩 한 알은 새가 먹으라고, 또 한 알은 땅 속의 벌레 먹이로, 그리고 또 한 알은 사람이 수확할 수 있도록 한 구덩이에 콩 종자를 서 너 개씩 심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사람은 소우주, 인간은 자연과 한 몸
과학적 영농법이라 해 종자 한 알씩만 심는다. 그리고 새나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농약을 묻혀 심거나 농약을 뿌려 놓는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공생(共生)하고 있으며 심지어 무생물과도 공존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공기 중의 탄산가스와 물로 탄소동화작용을 해 탄수화물을 만든다. 그런데 동물은 종류에 따라서는 동물만 먹는 종류도 있고, 동물과 식물을 다 먹이로 하는 종류도 있지만 대체로 식물이 합성한 탄수화물을 먹고 산다.
동물은 생명을 유지할 영양분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므로 반드시 식물에 의존해 영양분을 충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먹이의 근본은 식물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합성할 수 있으나 종자를 번식시키려면 곤충이나 동물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식물에 있어서 대기 중의 탄산가스만으론 부족하지만 식물을 먹고 동물이 소화한 뒤 배출하는 탄산가스와 땅 속의 미생물이 식물이나 동물의 유해(遺骸)를 분해시켜 발생시키는 탄산가스를 재원으로 보충해 끊임없이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가 있다.

새도 한 몫, 땅 속 벌레도 한 몫, 그리고 사람도 …
식물은 탄산가스를 고정시키려면 질소, 인, 칼리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질소와 칼리는 공기 중에도 있으나 인은 땅 속에 조금 밖에 없고 또 한편으로 인은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씻겨 내려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고 만다.
만약 바다로 흘러간 인이 순환되지 않으면 육지식물은 탄소동화작용을 하지 못해 죽게될 것인데, 바다 속의 식물 플랑크톤이 이 인으로 탄소동화작용을 하며 그것을 물고기가 먹는다.
이 물고기 중에 일부는 새의 먹이가 되고, 새는 육지에서 똥을 싼다. 이것이 곧 식물의 비료가 된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계에서 이렇게 순환의 원리에 따라 생명을 이어가며 공생 공존하므로 지속적인 생명활동을 할 수가 있다.
자연 속에는 일방적인 생산자(공급자)와 소비자(수익자)만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과 상생의 조화로 생명은 그 흐름을 그치지 않는다. 큰 순환 속에 작은 순환이 있고, 그것이 지속되며 생명은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출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생명의 주체는 자연이고 사람은 자연의 자손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고 자라서 우주의 법칙대로 살다가 다시 온 곳(자연)으로 돌아가는 필연적인 운명을 타고 났다.
인간은 자연의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참 생명을 성취하는 길이다.

고 종 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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