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따위로 대충 때워선 곤란
영양분 갖춘 식단 미리 짜둬야

예전에 최불암 선생이 진행하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냉라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름만 듣고는 시원한 라면도 있구나, 하고 입맛을 다셨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한여름에 너무 힘들고 땀을 흘리니 입맛이 없어서 구내식당에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아주 간단했다. 라면을 삶고, 스프를 넣고 끓이는 대신 얼음물에 넣어 말아먹었다는 것이었다. 칼로리는 공급해야 하고, 날은 더우니 혀가 까끌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신종 라면이었다.

종종 텔레비전 뉴스에 삼복더위의 공장을 취재해서 보여준다. 얼음조끼를 준비하고, 수시로 냉찜질을 하며, 특식을 제공하는 내용이 나온다. 대부분 사정이 넉넉한 대기업 현장이다. 중소기업의 현장은 그다지 대책을 세워서 여름을 나는 것 같지 않다. 필자가 요리사를 시작하던 무렵에는 주방에 에어컨이 설치된 경우가 없었다. 요즘은 오픈 주방이 많아서 홀의 냉기가 빨려들어오기도 하거니와, 거의 에어컨을 설치해서 견딜 만하다. 과거의 주방은 한여름 기피 보직이 있었다. 고기를 굽는 그릴과 오븐 때문이었다. 대개 그릴과 오븐은 붙어 있다. 2중으로 더웠다. 그릴에 구워서 오븐에서 추가로 익히는 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숯이라도 쓰는 그릴이라면 더 힘들었다. 이런 강렬한 열기가 없더라도 주방은 힘들고 괴롭다.

다른 산업현장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타이밍이 중요하고 공정에 맞춰 착착 각 담당이 일을 잘 밀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테이블에서 시킨 4가지 요리가 동시에 홀로 나가야 한다. 시스템이란 일종의 흐름이므로, 이런 과정이 삐걱거리면 생산속도도 늦어지고 분위기도 나빠진다. 그러니 긴장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런 긴장감 높은 현장은 먹는 거라도 좋아야 한다. 먹어서 스트레스를 푼다. 대개 식당 직원들의 점심은 꽤 맛있고 푸짐하다. 먹성 좋은 젊은 직원이 많으면 요리도 그만큼 많이 준비해야 한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고, 요리하다 남은 자투리로 반찬을 많이 만든다. 요리사들은 천성적으로 뭘 버리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는 메뉴란 게 대개 몇 달은 지속되고, 몇 년 내내 계속되는 경우도 많다. 한두 가지 메뉴만 파는 전문점도 많다. 이런 집은 자투리가 늘 같다. 그걸 매일 달리 요리해서 먹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치킨구이를 파는 식당은 손질한 살코기와 껍질이 늘 남는다. 처음에는 튀겨먹고 볶아먹고 지져먹는다. 감자도 넣고 양파도 넣고 부재료를 달리 해서 먹는다. 그러다가 지친다. 일반인들이라면 얼씨구나 하고 맛있게 먹을 재료들이 결국 폐기처분되는 이유다.

다른 예를 들어서 생선횟집에서는 뼈가 남지는 않는다. 대개 탕을 끓여서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식집에서 생선스테이크나 날로 내는 카르파치오메뉴를 많이 팔면 뼈가 좀 남는다. 양식당은 탕을 끼워서 팔지는 않는 까닭이다. 물론 끓여서 스프를 내거나 소스의 재료로 쓰지만, 그래도 상당히 남는다. 처음에는 생선매운탕을 끓여내니 직원들이 환호했다. 그렇게 며칠을 내보면, 아무도 숟가락을 대지 않는 음식이 된다. 이른바 직원식이라고 부르는 음식이 식당에서는 참 별난 뒷얘기를 많이 만들어낸다. 중식당 직원들은 짜장면을 직원식으로 내면 좋아한다고들 들었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피자집 직원들은 절대로피자를 안 먹는다. 피자는 반죽을 미리 해둬야 한다. 손님의 수요를 예상할 수 없으므로 넉넉하게 만든다. 늘 남게 마련이다. 그걸로 피자를 구워 내면 먹는 이가 딱 한 사람 있다고 한다. 입사한 지 며칠 안 되는 신입직원이다.

자체 직원식당을 가지고 있는 대형 식당은 조리실 직원이 따로 있어서 메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영세한 대부분의 식당은 자체적으로 메뉴를 준비한다. 그날그날 남는 재료로 만드는 임기응변식도 있고, 한 달 메뉴를 미리 짜는 계획형도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건 박봉에 육체적 정신적 피곤이 뒤따른다.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식단을 짜둬야 그나마 영양공급이 된다. 식단이 없으면 바쁘고 입맛 없다고 대충 라면이나 끓여먹고 만다. 라면은 간식으로는 간편하고 훌륭한 음식이지만, 섬유소와 단백질 같은 영양이 골고루 들어 있지는 않다. 고급식당에서 정작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이 라면이라는 비공식 통계가 있다. 그만큼 식단을 갖추지 않고 그날 메뉴를 메우는 형태로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근로자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충분한 급양도 받아야 한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치열한 경쟁에 따른 자금 부족, 주인의 무관심, 부족한 인력 등으로 식사가 부실해지는 경우도 많다. 바쁠 때는 햄버거 배달을 시키기도 한다. 하여튼 모든 근로자들이 더 맛있는 밥을, 충분히 먹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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