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게 음식 현장도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씨 뿌리고 수확하고 고기를 잡고 가축을 치는 사람들이 있어 한 그릇의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 현대가 과거와 다른 것이라고는, 공업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음식에 근대적 산업이 개입한 것은 양차 세계대전이 큰 몫을 했다. 전선에 대량의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이 더 싸게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산업혁명의 혜택을 받은 대량생산의 기술이 접목됐다. 통조림이며, 말린 빵(건빵과 비스킷이야말로 군수물자의 핵심이었다), 심지어 담배도 이때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도 이런 산업화의 혜택과 우산 아래 먹고 살고 있다. 6.25전쟁은 연합군과 우방국의 젖줄이 우리에게 물려지는 계기가 됐다. 대량생산한 통조림은 부대찌개가 됐고, 1차산물이 중심이던 시장에 각종 현대화된 공업생산물이 쌓였다.

한마디로 우리가 먹는 음식은 누가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산업과 유통이 복잡하게 결합돼 생겨난 네트워크이자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 명도 안 되는 급식조리사들이 몇 천명에 달하는 학생들과 회사원들을 먹인다. 축적된 산업 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번에 엄청난 양을 조리할 수 있는 장비와 반조리 식품이 없다면 우리는 굶거나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맛을 내기 위해 공장에서 생산된 간장과 된장 같은 장류, 조미료, 건조시킨 맛내기 채소들(양파와 마늘, 생강파우더가 없다면 우리는 일일이 그것을 까고 다져야 한다)로 우리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맛을 혀에게 선사할 수 있다.

대량생산현장에서 일일이 옛날처럼 흙 묻은 채소를 털고, 양파를 까고, 마늘을 벗긴 후 다져서는 산업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한 해 동안 급식처에서 쓸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담가 쓴다면 가능한 일일까.

예를 들어 하루 식수인원이 2000명인 현장에서 먹는 장류과 김치를 담가서 쓸 방법이 있을까. 있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일까.

우리가 사먹는 김치찌개의 가격은 7000원을 넘길 수 없다. 물가 비싼 지역이라도 8000원이 한계다. 김치를 직접 담가서 그 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부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수고로 대량생산한 김치를 쓰게 된다.

여전히 우리는 음식에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어머니의 손맛, 아내의 정성, 생산한 농부의 마음 같은 것들이다. 그런 사랑스러운 감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실제로 집에서 우리는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음식 생태계에서는 이미 산업의 힘으로 그 맛과 영양을 꾸리고 지탱한다. 6000원짜리 찌개를 파는 ‘00천국같은 간이식당에서 수십 개의 메뉴를 그들이 손수 만들고 저장했다가 공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레토르트와 반가공 조리의 덕을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음식에 1만원을 기꺼이 지불할 의지가 있다면 물론 말이 달라지겠지만, 6000원에 필요한 효용을 얻는 것도 우리의 삶의 일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뭔가 생명 없고 무가치할 것 같은 그런 공장제품 음식도 우리 형제들의 손으로 만들고 보듬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없는 생산은 없는 것이다. 물론 오늘 저녁에 따스한 손길로 만든 더 재래식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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