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미술 속에서 길을 찾다] 단순함의 미학

단순하고 간결한 것에 대한 추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미니멀리즘은 인테리어 디자인, 패션, 건축물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니멀라이프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삶의 방식에서 또한 심플함을 지향하게 됐는데, 이렇게 다양한 방면으로 나타난 미니멀리즘 정신은 최소한의 예술이라는 뜻의 미니멀 아트(Minimal Art)의 등장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단순함이라는 키워드로 통칭하기엔 내포한 의미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미니멀 아트. 형태와 색감을 단순화함으로써 가장 핵심적인 본질만을 전하고자 했던 미니멀리스트들의 바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돼 지금까지 전해져왔을까.

 

최소화에서 본질을 찾는 미니멀리즘

마크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로스코채플(Rothko Chapel)
마크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로스코채플(Rothko Chapel)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인 상자 하나, 벽에 걸린 사각형 물체.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특정 공간에 놓여있지 않는 한 예술 작품인지 사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무언가를 재현하지 않고 최소한의 형태와 색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추상회화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주로 입체 조각들을 전시하며 이것 또한 회화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회화의 매체인 캔버스의 평면성에만 집중한 추상회화 작가들과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Carl Andre, 1935-)는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어 수평과 수직이 일정한 사물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벽돌이라는 흔한 소재가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느냐는 혹평이 잇따랐지만, 그는 벽돌 외에도 알루미늄과 구리와 같은 재료를 바닥에 진열하는 작업을 이어가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해석할만한 부가적인 단서를 주지 않고 존재 자체로만 메시지를 던진 셈인데, 그는 작품이 있는 모습 그대로 관람자에게 보이고 해석되길 원했던 것이다.

미니멀리스트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오브제를 전시하는 방식으로 미니멀리즘의 궤를 이어갔는데 이들은 회화의 주 매체인 캔버스에도 두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회화 작품이 평면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기본 전제를 부정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캔버스를 벽이 아닌 바닥에 설치함으로써 캔버스도 하나의 사물처럼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의 미술계는 회화와 평면성을 동일시했던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이론을 오랫동안 지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바닥에 놓인 사물도 회화가 될 수 있다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발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회화를 캔버스라는 물질에만 가두는 것을 부정했던 미니멀리스트들은 캔버스도 작품의 도구일 뿐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어느 공간에서나 전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미니멀아트 조각의 선구자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의 작품 <무제, Untitled>(1990)를 보면, 어떠한 것도 재현하지 않은 채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사각형 오브제가 벽면에 일렬로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캔버스 속 가상의 세계를 보는 것보다 꾸며진 공간 안에서 전시장 내에 배치된 사물을 바라보며 느끼는 관람자의 인지와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는 사람의 감각, 지각, 인지 행위를 무엇보다 중시하며 관람자의 생각과 반응을 예술 행위의 일환으로 본 결과다. 우리가 전시장에 갔을 때 작품을 향해 바로 직진하지 않고 공간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사물 주변을 훑는 행위를 작품 감상의 시작으로 보겠다는 시각은 그리 낯설지 않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시각에서는 작품과 관람자를 둘러싼 환경, 즉 공간조성도 더 이상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작품과 동등한 위치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감상의 시작을 공간으로 보는 관점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무제, Untitle(1990)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무제, Untitle(1990)

저드는 회화가 가장 회화답기 위해서는 평면성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던 그린버그의 말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입체 작품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고유성을 부각하는 방법이라 주장했다. 그 결과 오브제가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는데, 그의 의도에 따르면 작품이 놓인 위치, 각도, 조명,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 등 여러 조건들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며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는 작품이 공간을 배제하고서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저드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어느 한순간 갑자기 전위예술로 등장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추상 회화 작가 마크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로스코 채플>(1964-1967)에서 이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로스코는 미국의 텍사스 휴스톤에서 기획한 <로스코 채플>이라는 연극적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관람자와 화가 자신의 심리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사각형 건물 내부를 팔각형으로 꾸미는 등 작품과 물리적 환경에 대해 고민한 로스코는 조명, 벽지, 바닥의 색감, 사물의 배치와 같은 요소들이 모두 작품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며 연출했다. 여기서 작품과 관람자의 물리적 거리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관람자가 작품과 가까워질수록 심리적 거리도 최소화돼 진정한 리얼리티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전시 공간 기획자들도 디자인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며 공간 기획에 힘을 쏟는다. 작품을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초점을 두는 동향은 미니멀리스트 정신이 우리의 삶 곳곳에 깃들어 있음을 체감한다.

 

재현을 벗어나 실현하는 이상세계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등가Equivalent VIII(1966)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등가Equivalent VIII(1966)

한때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단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믿음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색채의 파괴, 형태의 변형과 같은 기존의 미술 사조를 전복하기 위한 전위예술 중 하나라고 보기에는 미니멀리즘의 정신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상은 더 깊이 고찰해볼 만 하다.

미술사학자 할 포스터(Hal Foster, 1955-)는 미니멀리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터닝 포인트로 보며 모더니즘과 구분한다. 즉 재현을 통해서 이상세계를 그리며 캔버스 내부에서 세상을 읽게 하는 것이 모더니즘이라면, 관객을 공간 속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지금껏 보이는 것만을 믿고 받아들였던 수동적인 관람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래로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됐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서 해석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점이, 또는 그것이 오히려 관람자의 적극적 관람 태도를 유도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미술사조로 구분하자면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등장한 사조로 알려졌지만, 구상에서 추상으로 단순화되는 과정은 20세기 중반의 화가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작품이 단순할수록 그 작가의 작품이 처음부터 단순했으리라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대개의 경우 작가가 작고하기 전까지의 습작을 년도 별로 정리해보면 복잡한 구상 형태로 시작했던 초기 작품들조차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한 형태로 변형돼 뼈대만 남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시대를 막론하고 결국 구상에서 반구상으로,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점, , 면만을 남긴 추상화로 정착하는 이유는 미니멀리즘 정신이 특정 기간 발생한 사조가 아닌 예술인들의 마음속에 최종 목적지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생활 방식을 추구하며 정신과 육체 비우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따라 미니멀에 관한 키워드가 들어간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지금, 최소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막대한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 글 이윤정 서정아트센터 큐레이터 / 진행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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